떡살을 바라보며

2019.08.08 06:38

최기춘 조회 수:5

떡살을 바라보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최기춘

 

 

 

 

 우리 집에는 오래된 떡살이 하나 있다. 나는 가끔 떡살을 들여다 본다. 떡살에서 고향 잔치마당의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정겨운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입에 군침이 돈다. 떡은 배고픔을 달래려고 먹는 음식은 아니다. 떡은 주로 제사를 지내거나 큰 경사가 있을 때 만들어 먹었다. 지금은 떡이 귀한 음식 축에 못 들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떡은 귀한 음식이었다. 생일이나 제사, 명절 때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오죽하면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속담이 있었겠는가? 지금은 자는 사람 떡 먹으라고 깨우면 짜증을 낼 것이다. 인절미나 시루떡은 만드는 과정이 단순하지만 떡살로 찍어서 만든 흰 떡은 과정이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간다.

 

 떡살은 어머니의 손때가 뭍은 생활도구다. 떡살에는 어머니의 미소가 한 송이 걸려 있다. 떡살로 떡을 누르고 썰 때 옆에서 본 흐뭇해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떡살은 언뜻 보면 빗금만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 모형이 많이 들어 있다. 세모, 네모, 마름모, 다이아몬드, 물결모양도 있다. 옛 어른들은 음식에도 깊은 품격과 멋을 담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도 떡살 때문에 생겨난 속담일 것이다. 보고 또 봐도 싫증이 나질 않는다. 단단한 나무로 만들었지만 부드러운 떡하고만 놀아서인지 떡살은 부드럽게 느껴진다. 떡살의 섬세하고 단정한 모습이 우리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가 떡살을 닮았는지 떡살이 어머니를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머니는 바쁜 농사철에도 항상 단정하셨다. 단정하게 빚은 낭자머리에 비녀를 꽂은 모습은 곱고 예쁘기도 했지만, 어떠한 경우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도 항상 몸가짐을 바르고 단정히 하라고 하셨다. 끼니는 한두 끼 굶어도 티가 안 나지만 몸가짐이 단정하지 못하면 금방 궁색한 티가 난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어머니가 만든 한과는 예술작품이었다. 한과는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간 음식이다. 과정마다 한 가지만 잘 못 되어도 실패작이다. 가양주도 잘 빚었다. 어머니는 한과도 어렵지만 가양주를 빚는 일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다른 음식들이 다 잘되어도 잔치의 성패는 술맛이 좌우한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빚은 가양주를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인다. 농사일이 끝나고 겨울에도 어머니는 바빴다. 그 시절은 결혼식을 하면 으레 피로연을 가정에서 했다. 우리 집안간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이바지 음식을 할 때나 피로연 때면 어머니를 모셔갔다. 어머니는 매사에 최선을 다 하지만 음식을 할 때면 온 정성을 다 하셨다. 어머니는 음식을 만드는 여인들을 기분 상하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정결하고 기쁜 마음으로 해야 음식이 맛있고 먹는 사람의 건강에도 좋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손수 만든 흰떡, 조청, 한과, 메밀묵, 가양주의 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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