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가운데 사는 이유

2019.08.17 06:54

한성덕 조회 수:2

소망가운데 사는 이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대학을 졸업했지만 용남이는 백수에 천덕꾸러기였다. 누나에게 구박당하고, 반반한 친구조차 없는 방안퉁수였다. 어머니의 칠순잔치에도 자랑할 만한 아들이 못되었다. 그래도 용남이에게는 자기만의 장점이 있었다. 대학시절 산악동아리에서 쌓은 암벽타기 실력이었다. 실은, 대단한 실력자라 해도 일상생활에서 그게 얼마나 필요하겠는가? 주변 사람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칠순 어머니의 연회장에서 직원이자 동아리 후배인 의주를 만났다. 뜻밖의 만남에 어색한 재회도 잠깐,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발생했다. 하필이면 그날, 호텔에 원한을 품은 자가 독가스를 살포했다. 유독가스는 안개처럼 온 도시로 확산되면서 건물을 타고 서서히 올라갔다. 용남이의 진가가 날개를 달자 의주도 힘을 실었다. 암벽타기에서 다져진 훈련으로 자기 가족은 물론, 친척들까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용남이와 의주도 우여곡절 끝에 위험지에서 탈출했다.

 올여름 극장가에서 호평을 받으며 상영 중인 영화이야기다. 지난 7월 말에 개봉한 재난 탈출의 액션, ‘엑시트’의 장면이었다.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떨어낸 영화여서 몹시 긴장하며 감상했다. ‘수필도 이래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남이는 암벽타기에 탁월한 실력자였다. 그런 실력을 아는 이가 없으니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만의 능력이요, 혼자만이 알고 있는 암벽타기 실력자다.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외면하는 외로운 섬, 그 자체였다. 그의 실력을 무엇으로 증명하며, 어떤 방법으로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저 벙어리 냉가슴일 따름이다. 그런 용남이도 극한 재난이 닥치자 활용가치가 컸다. 그가 아니었으면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었겠는가?    

  나는 기독교인이면서 직분 상으로는 목사다. 어떤 직분과 상관없이 이를 통칭해서 신자라고 부른다. 오늘은 기독교 신자로서 용남이를 생각하며 말해보려고 한다.

  평상시에는 일반인과 신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이마에 신자라고 써 붙인 것도, 양어깨에 견장을 단 것도, 특이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옷으로 구분할 수도, 걸음걸이로 알아볼 수도 없다. 때로는 신자라는 게 불필요해 보이고,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신자된 것이 부끄러워 신자가 아니기를 바라며,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을 때도 있다. 일반인과 똑 같은 잘못이 있어도 기독교신자는 확대 해석되고, 대단히 잘못 된 일을 저지른 것처럼 다루는 언론의 행태에서 느끼는 감정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같은 신자로서 그가 저지른 작태가 가슴을 때린다. 근래에 들어와 기독교가 기독교답지 않게 처신하는 자들 때문에, 기독교전체를 욕하고 손가락질하며 폄훼하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더 미어진다.  

 

  그렇다 해도 큰 위기가 닥치면 신자의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나는 큰 위기를 인류최후로 본다. 위기에서 용남이의 암벽타기 ‘실력’이 빛을 발휘하듯이, 큰 위기에서 신자의 신자됨이 ‘믿음’으로 빛을 본다는 말이다. 신자의 ‘믿음’이 자기생명을 살린다는 뜻이지, 용남이의 ‘실력’으로 사람들을 구해낸다는 게 아니다.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라기보다 믿음에서 오는 ‘신뢰성’을 가리킨다.

  나는 그 ‘믿음’을 붙들고 살아왔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며,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 믿음은,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전적인 신뢰에 기인한다암벽타기 실력을 몰라주는데도 영남이가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처럼, 내 믿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내가 늘 소망가운데 사는 이유다.    

                                                    (2019.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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