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꼭지 따기와 재채기

2019.09.01 12:45

구연식 조회 수:63

고추꼭지 따기와 재채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고추는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입맛을 더해주는 매운맛을 내는 우리나라의 대표 식자다. 김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다. 맵다고 하면서 더 먹게 되는 것으로서 어느 식탁 위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고향에는 부모님이 경작하시던 전답이 있다. 지난해 12월 말쯤 체신관서에서 근무하던 아우가 정년퇴임을 했다. 아우도 허우대만 컸지 농사일은 별로 해본 경험이 없어서 부모님이 경작하시던 논·밭을 가꾸노라 힘이 드는 모양이다. 가끔 고향에 들르면 아우가 익숙지 않은 농사일에 비지땀을 흘리며 일할 때는 짠한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농사일을 눈으로만 보았지 실제 일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에 아우는 나를 아예 논밭에는 발도 못 디디게 한다.

 

 해마다 가을이면 부모님은 수확한 농산물을 모든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 고향 집에 오면 손에 들려주거나 택배로 부쳐 주셨다. 값으로 치면 큰돈은 아니어도 새끼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게 그렇게도 흐뭇하셨던 것 같다. 자식들은 부모님의 땀과 정성이 깃든 것 같아 쉽게 먹지도 못했다.

 이제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가을 추수철에는 고향 헛청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농산물 꾸러미들이 떠오를 뿐이다. 그런데 아우는 부모님 대신 형제들에게 농산물을 나누어 준다. 이달에도 부모님 삭망에 성묘를 하러 갔는데 아우는 광에서 고추포대와 참깨 봉지를 가져와 내 차에 실어 주었다. ‘내가 농사 지은 것이니 형님 갖다 드세요.’ 했. 나는 순간 고마워서 힘들게 농사 지을 때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미안하구나잘 먹을게.하면서 옆에 있는 제수씨에게 제수씨, 농사 짓느라고 수고하셨어요. 염치가 없습니다.’ 라고 겸연쩍은 인사를 했다. 아무튼 식구들 먹으려고 농약도 한 번 안치고 재배한 고추라면서 잘 드시고 형님, 형수님 건강 챙기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부모님의 가업을 승계하여 동생들에게 해야 할 일을 아우가 대신하고 있으니 마음은 편치 않다. 아내는 농약 치지 않은 무공해 김장용 고추와 참기름을 짤 참깨까지 얻어 오니 입이 귀에 걸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벌써 김장 준비에 신바람이 났다. 나는 아내 기분을 부추기느라고 고춧가루를 빻기 위해서는 고추 꼭지를 따야 하기 때문에 아내한테 고추꼭지를 따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토를 달 텐데, 오늘 고추꼭지 따는 일은 그저 호호하하다.

 

 면장갑을 끼고 고추꼭지를 따는데 나는 다른 사람보다 알레르기 반응이 예민하여 쉴 새 없이 재채기가 났. 나는 재채기를 할 때마다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아 더 힘주어 재채기를 연속으로 하니, 아파트 전체가 울렸다. 아파트 주민들이 창문을 열어 재치고 어느 집에서 요란한 재채기 소리가 들리는지 고개를 내밀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수건으로 입을 막고 재채기를 하니 소리는 작아졌어도 횟수는 더 많아졌다.

 

 아우는 이 고추로 김장을 하여 우리 부부만 먹는 줄 아는데, 아내는 결혼한 새끼들 좋은 것 다 퍼주려 하니 아내는 재채기도 안 하고 그저 싱글벙글한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은 아우가 나에게 부모님 대신 베푼 것을 기뻐하실 것이다. 아우는 나의 차에 실어주면서 나의 건강을 생각하며 흐뭇했을 것이다. 아내는 새끼들에게 김장을 해서 나누어 줄 때 입은 함박만 할 것이다.

 

 조상님의 음덕이 자손만대까지 베풀어 지니 가을은 더없이 좋다. 좋은 것은 새끼들 다 나누어 주고 우리 부부는 김치 쪼가리 하나로 밥을 먹어도 가장 행복한 밥상이 될 것 같다.

                                                                                   (2019.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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