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

2019.09.20 06:52

호성희 조회 수:7

어머니의 손맛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성 희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는 온데간데없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알리고  있다. 어느새 밥상머리에는 국물이 올라와야 반갑다. 이제 곳곳에서 축제마당이 벌어져 시끌벅적해지면 고향 바닷가에도 아낙들의 갯벌 긁는 소리가 살 오른 바지락들의 잠을 깨울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외갓집 동네 갯벌로 바지락을 캐러 가시곤 하셨다. 그곳의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아낙들의 바지락 긁는 소리가 속도를 내며 바빠진다.

 

 자연이 허락한 시간을 아낌없이 써가며 삶의 터전을 일구는 건강한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소리가 갯벌에 퍼진다. 조개는 팔아서 용돈을 하고 덤으로 잡은 박하지는 밥상에 오른다.

 

 매콤하게 묻혀 밥상에 오른 박하지 게장은 흰쌀밥과 찰떡궁합이었다. 더러는 잘라 살 오른 바지락을 듬뿍 넣고 끓인 박하지게탕은 울타리 밖 호박잎을 한 움큼 따다 넣어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말린 바지락 살을 풋고추와 함께 간장에 조려 주셨던 그 반찬은 감칠맛이 있어 어디에 비길 바도 아니었다.

 

 얼마 전 저녁을 먹을 때 아버지가 어머니 살아계실 때 얘기를 꺼내시며, 네 엄마가 반찬은 참 잘해먹었는데 하시며 옛날 바다에 나가면 맨 먹을거리였는데 지금은 예전 같지 않더라며 아쉬워하셨다. 아버지도 어머니 돌아가신 뒤로 10년을 혼밥하셨으니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셨겠지만 구순을 코앞에 두니 어머니와 함께 하셨던 때가 그리우셨나 보다.

 

 “시골집 정리하고 아무래도 너희가 내려와서 살아야 할 것 같다.

 “거기 가서 어떻게 살아요? 살려면 집도 고쳐야 하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요. 아버지!

 “그럼 어떻게 한다냐? 엄마가 담가놓은 된장이며, 고추장 그리고 간장은?

 “아버지, 그거 이제 못 먹어요. 너무 오래돼서 돌같이 딱딱해졌던데요?

 

  어머니 손길이 멎은지 10년이 지났으니 윤기 흐르던 장독대 장독들의 윤기는 사라진 채 먼지가 가득하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독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늘 당연하다고 느꼈던 존재들이 요즘 들어 더없이 소중해지는 것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늘 곁에 있을 것 같던 남편이 훌쩍 떠난지 열 손가락을 다 접어도 모자라는 세월이 지나도록 실감이 나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도 어머니 돌아가신 것을 못 잊으시는 것 같다. 어쩌다 새로운 음식을 대할 때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음식과 비교하시며 네 어미가 손맛은 참 좋았는데 하시며 썩기 아까운 사람이라고 혼자 말씀을 하신다.

 

 이제 전국 방방곡곡 가을축제로 시끌벅적할 텐데 울 아버지 이곳저곳 축제마당 순례하시며 술 한 잔 하시고 전화하실 때가 돌아왔다.

 “야, 큰공주, 아비 술 한 잔 했다. 기분 좋아서 한 잔 했다!

 “잘하셨어요. 아버지, 식사하시고 주무셔야 해요!

 “야, 큰공주, 고민은 가불하지 말고 희망을 가불해서 열심히 살아라. 알았지?

 “네, 아버지, 이제 주무세요!

 

 늘 하실 당부의 말씀도 아버지는 농담처럼 툭 던지면서 말씀하시곤 한다. 말씀은 안 하셔도 애들 다 출가시키고 혼자 사는 큰딸이 마음에 걸리시는가 보다.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 아버지 건강이나 잘 챙기셨으면 좋겠다. 아버지 큰딸은 가불한 내일의 희망까지 보태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2019.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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