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3 07:13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호 성 희
주말부터 태풍이 온다더니 태풍의 영향인가? 아침부터 쓸데없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우산을 써도 옷에 빗물이 흠뻑 젖어 소용이 없다. 태풍 ‘파타’의 영향이라고 연신 재난경보문자가 뜨더니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안내방송을 하여 어수선하다.
며칠 전 쓸고 간 태풍 ‘링링’의 흔적이 아직 남아 안타깝게 하더니 성당에 갔다 오는 길에 보니 정읍천변의 시냇물이 넘칠 듯 사납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오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30년 전인가, 정읍 시내가 물바다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생각났다. 서울에 있는 아들 녀석의 전화가 왔다.
“어머니, 뉴스에서 정읍천 범람 위기에 있다는데 나가시지 말고 집에 계세요.”
“아까 성당에 다녀오는 길에 그쪽으로 왔는데 물은 많이 내려가는데 이제 비가 그쳤으니 더 불어나진 않을 것 같던데!”
타관에 나가 있는 자식이 가끔 어미 걱정으로 안부 전화라도 해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 내리는 가을비는 애써 지어놓은 농작물들을 망쳐버려 농부들의 가슴속을 애타게 하는지라 반갑지 않은데 눈치도 없이 쉬지 않고 내린다. 제법 알곡이 차서 고개가 무거워진 벼들이 비를 머금고 한쪽부터 눕기 시작하더니 바닥에 깔려 있다. 며칠 전 태풍에 쓰러진 벼들을 겨우 세워놓은 논에도 별수없는지 묶인 채로 쓰러져 있다.
심술쟁이 못된 사람처럼 꼭 이맘때면 찾아오는 태풍이 선선한 바람과 상쾌한 공기, 파란 하늘을 시샘이라도 하는 것처럼 방해꾼 노릇을 하고 있다. 봄부터 애써 지어 놓은 농사를 망쳐 농부들의 얼굴에 근심거리를 안겨다 주었다. 심술궂은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고 이 좋은 가을에 농부들이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 바란다.
가을비는 왠지 모르게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하는 것 같다. 특히 바람 불고 낙엽이 날리면 올해도 막바지에 접어들어 얼마 안 남았구나 싶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세월은 지칠 줄 모른다. 요즘들어 더 세월은 쉬지 않고 참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9월도 이제 며칠 안 남았다. 눈만 감았다 뜨면 하루가 지나는 것처럼 빠르게 시간이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태풍 후유증으로 가을비가 오전까지 내리더니 오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에 바람까지 제법 서늘해졌다.
동갑내기 모임이 있어 외출하려는데 서늘한 기운에 반소매를 벗고 개량한복 긴 팔을 입으니 차림새가 괜찮다. 모처럼 바람도 쐬고 가을 기운도 받고 걸어서 모임 장소에 갈 요량으로 편하게 신도 갈아 신고 길을 나섰다.
아파트 옆에 있는 조그만 논에는 태풍이 빗겨지나가 예의바른 수수와 노릇노릇 익어가는 벼가 고개 숙여 절을 하고 있다. 마치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하는 것 같다. 한 알 한 알 농부들이 땀 흘리며 겸손히 기른 자식들이 이 좋은 가을에 농민들 얼굴에 함박웃음을 안겨다 주길 소원해 보았다.
(201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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