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 핀 행복

2019.10.13 13:27

전용창 조회 수:7

고난 속에 핀 행복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짹 짹 짹 짹” 오늘 아침에도 까치는 일찍 나와서 나를 반겨 주었다. 감나무에서 총총걸음으로 연신 고개를 흔들며 무어라고 지저귀고 있었다. 나도 만나서 반갑다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날마다 반기며 배웅하는 까치가 있기에 오늘 하루도 기대가 된다. 까치는 참으로 부지런도 하지. 먼동이 트자마자 둥지를 박차고 나왔나 보다. 나는 6시에 아침 식사를 마쳤는데 까치는 아직 식사를 못 하고 이제야 먹이를 찾나 보다.

 짐차를 몰고 독배인터체인지를 지나서 익산쪽으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렸다. 모내기를 끝낸 들녘이 푸른 초장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불만의 씨앗이 남아 있었다. 칠순을 앞두고 막일을 한다는 게 어디 할 일인가? 힘에 부치고 건강도 해치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새벽잠을 설치는 게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환경미화원은 나보다 더 일찍 나오고 나이도 나보다 더 많다. 그분들은 힘든 일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가난을 원망할까, 젊은 날을 허송세월로 보냈다고 후회할까? 어느 날 그분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힘에 부치고 고단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단지 자신이 그만둘 때까지 나올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고 했다. 오히려 나이가 많다고 해고될까 봐 그게 더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지인들에게서 듣는 말이 있다. 세월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며 밤마다 잠이 안 와서 걱정이라고 했다. 나도 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막상 일터에 나가서 힘든 일을 하고 보니 그 말은 호강에 겨운 사치였다. 하루가 그렇게도 길고,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우면 10분도 채 안 되어 곯아떨어지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7시 반에 일을 시작하여 한참이나 일을 해도 10시도 채 안 된다. 그런데도 뱃속에서는 먹을 것을 달라고 꼬르륵 했다. 젊었을 때는 자고 나면 새 힘이 생겼는데, 지금은 잠을 자도 개운치가 않고 피로가 남아있다. 한참 더 *거푸집을 운반하고 나서야 새참 시간이 되었다. 간식으로 생수와 초코파이 2개를 받았다 초코파이를 혀에 갖다 댔다. 침이 나오기가 무섭게 입안에서 녹는다. 초코파이가 그렇게 맛있는 과자인 줄 예전에는 몰랐다.

 

 오전 쉬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이때만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시간이고, 오후에는 집에 갈 시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간식 시간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오래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는 학벌도, 나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전부터 일을 나온 사람이나 입김이 센 사람이 분위기를 장악한다. 나와 함께 일한 사람 중 힘이 센 사람이 있었다. 그는 25킬로나 되는 거푸집을 쉬지 않고 던지며 일했다.

  “혹시 나이가 오십대 초반입니까?

  “무슨 얘깁니까 예순세 살입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열 살이나 젊게 본 것이다.

  “아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그는 자신의 몸이 재산목록 1호라고 했다. 일이 끝나면 무조건 헬스장으로 달려가서 한 시간은 운동을 하며 땀을 빼고, 샤워를 마치고 상쾌한 기분으로 집에 간다고 했다. 그렇게 한 지가 벌써 15년이나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밥맛도 좋고 잠도 잘 잔다는 것이다. 그동안 돈을 모아서 조그만 아파트도 장만했다며 날마다 행복하다고 했다.

 또 한 사람은 올해 나이가 칠순인 ‘유 장로님’이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데도 얼굴은 동안 童顔이다. 장로님은 날마다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온다. 간식도 싸 와서는 우리에게 나누어준다. 맛있는 호박식혜와 생강차가 그분이 가져온 간식이다. 이제 선을 볼 나이도 아닌데 선크림을 바르고 오시냐고 물으면 부인이 나올 때 발라준다고 했다. 그 연세에도 부부 금실이 좋으니 참으로 행복한 분이다. 그분은 다른 사람보다 1시간 일찍 나와서 1시간 먼저 퇴근한다. 퇴근 뒤에는 집에 가서 씻고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간다고 했다. 유 장로님은 현재 J대학교 야간 사회복지학과 졸업반이다. 누군가 그에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물으면 그분 대답은 간단했다. “백세시대인데요.” 앞으로는 고령 시대이니 어르신들 사회복지사를 더 선호하는 시대가 온다고 했다. 일이 끝나면 피곤하여 그냥 쉬고도 싶지만 젊은 학생들과 공부하면 피로도 풀리고 행복하다고 했다. 여학생들이 자기에게 “오빠!”라고 부르면 아직도 청춘인 양 기쁘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내가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다. 그가 멀리 연변에서 온 교포이기 때문이다. 사십대 중반의 젊은이인데 그는 10여 년 전에 한국에 와서 자신과 처지가 같은 교포여성과 결혼하여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하루 일당 12만 원을 받으면 인력공사에 소개비 만 원을 주고 나머지 11만 원은 고스란히 아내에게 준다고 했다. 딸의 장래를 위하여 돈을 모으는 재미에 피곤함도 모르고 행복하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연변 형제가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다.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모으려고 그토록 보고 싶은 부모 형제와 고향산천을 10년이 넘도록 못 가봤으니 오죽이나 애간장이 타들어갈까?

 어느새 차는 집 근처에 왔다. 나는 마트에 들렀다. 오늘도 온종일 나만 기다리고 있을 아들을 위하여 아이스크림과 과자도 샀다. 찬거리도 조금 샀다. 집에 들어섰다. 문 여는 소리에 아내가 반겼다. 오늘도 수고했다며 짐을 받아주었다. 아들 정기도 빠른 걸음으로 와서는 나를 껴안아 주었다. 가족의 환영에 나의 피로도 사라졌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았다. 저녁 식단은 내가 좋아하는 꽁치찌개와 계란탕이었다. 아들은 내 옆자리에 앉아서 “아빠, 아빠”하다가는 “근데, 근데” 하며 하루의 일과를 보고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응, 그래?”하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밥을 먹고 나니 아들은 “자자, 자자”하며 나를 자기 침대로 끌고 갔다. 아들과 나란히 누웠다. 아들과 나는 두 손과 두 발을 들고 흔드는 운동을 하였다. 내가 다리를 내려놓자 아들은 내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나도 아들을 팔 베게 하고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날마다 힘든 일을 하지만 꿈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했다. 늦게나마 고난을 통하여 진정한 행복을 깨달았고 사람을 볼 수 있는 혜안도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정신장애아인 아들의 행복은 단순했다. 꿈을 소망하지도 않고 그저 아빠와 함께 있는 게 전부였다. 오늘도 아들의 기쁨은 나의 행복이 되었다.

 

                                                                      (2019. 5. 10.)

*거푸집 : 공사장에서 콘크리트를 치기 위해 설치하는 목제 패널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67 임대받은 서재 신효선 2019.10.11 4
1266 나만의 서재 만들기 정성려 2019.10.11 4
1265 치즈마을과 구절초 꽃동산 이윤상 2019.10.11 6
1264 칠순 아이들의 가을 나들이 최인혜 2019.10.11 10
1263 백두산 천지를 만나다 김순길 2019.10.11 4
1262 꽃할머니들의 목포 나들이 호성희 2019.10.11 9
1261 내가 본 나이아가라 폭포 호성희 2019.10.12 14
1260 호남의병의 선봉장, 박춘실 최기춘 2019.10.13 4
1259 임실 치즈축제 박제철 2019.10.13 3
» 고난 속에 핀 행복 전용창 2019.10.13 7
1257 내가 나에게 띄우는 편지 김학 2019.10.14 5
1256 고추 모종 이형숙 2019.10.14 41
1255 자식들에게 전하고 싶은 7가지 이야기 두루미 2019.10.14 29
1254 마음의 고향, 농촌 이우철 2019.10.15 5
1253 시장에서 보낸 반나절 이진숙 2019.10.15 6
1252 익모초 백승훈 2019.10.15 11
1251 전주한옥마을 구경 이진숙 2019.10.16 41
1250 행복한 동행 정근식 2019.10.16 3
1249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김창임 2019.10.17 8
1248 동전의 양면 같은 하루 박제철 2019.10.1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