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농촌

2019.10.15 05:09

이우철 조회 수:5

마음의 고향, 농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우철

 

 

 이웃에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평생 마음을 같이할 수 있는 반려자를 만나는 일은 더없는 행복이다. ‘세상은 점점 나아지는데 왜 내 삶은 힘들어질까?’ 늘 불평하기도 한다. 교통은 편리해지고 주거공간은 넓어지는데도 이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하나

 요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수필집이 서점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박경철 원장의 글이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시골의사 박 원장은 지켜야할 양심을 다지며 고향주민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다. 돈 버는 일에 연연하지 않으며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마음이 아름다워 보인다. 자신의 실수로 한 명이라도 희생되는 일이 있다면 백 명쯤은 살려야 한다는 심념으로 일하는 분이다.

 

 양심은 정치인에게만 있어야할 덕목일까? 멀리서 예를 찾을 것도 없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지켜야 할 양심을 지키며 살아 왔는가?’ 자신에게 묻는다. 다른 친구들은 도시로 도시로 나가 병원을 개업하는데 치매, 중풍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농기계사고로 실려오는 위급한 환자들을 보며 고향을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화급을 다투는 환자들에게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목숨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어린아이가 응급실에 실려 왔단다. 1%의 소생가능성만 있어도 목숨을 살려야 하는 것이 의사의 소명이 아니랴. 환자의 혈압과 맥박을 체크하고 수혈을 시작했다. 그 부모는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한 상태였지만 부모의 동의를 받을 계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아이의 삶과 죽음의 결정권은 아무에게도 없는 일이었다. 수혈을 하지 않고 속수무책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면 왜 병원을 찾아왔을까? 마침내 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건강을 되찾아 퇴원할 수 있었다.

 

 둘

 오래전 익산시 성당면장으로 있을 때였다. 중국 길림성에서 시집온 지 얼마 안 되는 박 모 씨가 마을일을 보고 있었다. 속칭 조선족 이장님이셨다. 사석에서는 나를 오빠라 부르며 붙임성 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성격이 활달하고 친화력이 있어 누구나 같이 있기를 좋아했고, 노는 자리라면 으레 ‘휘파람’  ‘반갑습니다’ 등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묘한 매력을 지닌 분이었다.

 

  결혼할 때는 잘사는 나라로 시집간다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단다. 그런데 웬걸, 무거운 십자가처럼 병수발을 들어야할 시할머니 시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여성이 생전에 해보지 않은 일이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단다. 다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는 친정아버지의 말씀 때문에 입술을 깨물며 참아야 했다. 슬하에 어린 딸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족쇄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침 가정의 달을 맞아 효부대상자로 추천하게 되었고, 전라북도지사 상을 받았다. 마을일을 맡아보면서도 병석에 계신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신다는 신문기사가 나고 입소문은 번져나갔다. SBS,  MBC TV에서 취재경쟁을 벌였으며, 그 상황이 방송되다 보니 인근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다문화가족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그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나의 임무이기도 했다.

 

 몇 년 후 극진히 모시던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가정은 점점 안정을 되아갔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던지 인근지역 하림()의 직원모집에 특별 채용되었으며, 다리가 퉁퉁 부으면서도 남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다. 15년이 지난 이제는 어엿한 중견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휴가철이면 친정에도 2년에 한 번씩 다녀온다며 가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최근 귀향 ‧ 귀촌인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농업을 주축으로 발전했던 나라는 흔들림이 없었다. 농촌이 삭막해지면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가족처럼 의료 봉사를 하는 박경철 원장이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참고 가정을 일으켜 세운 조선족이장이 바로 아름다운 동행이요 사회의 거울이다.  마음의 고향 농촌이 살만한 힐링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9.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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