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달래며

2019.10.19 13:48

전용창 조회 수:7

분노를 달래며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전 용 창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수색과 압수를 당했다. 우리 집에서 초등학교까지는 6km나 떨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여러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유상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나이가 예닐곱 살이나 많은 초등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우리를 불러서 일일이 주머니를 수색했다. 주머니에서 나오는 동전이나 지폐, 구슬 등 귀중품을 압수했다. 몸을 수색하기 전에 *비수를 들이대니 무서워 떨면서 그냥 당할 수밖에 없었다. 용돈을 빼앗긴 우리는 울며 집으로 돌아갔다.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알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에 말도 못하고 분노를 새겨야만 했다.

 

 두 번째 압수수색을 당한 때는 지금부터 22년 전이다. 그때 나는 J대학교 기술직 공무원으로 신축건물 점검을 하고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 내 캐비넷에 있는 서류를 몽땅 경찰청 수사과에서 가져갔다는 것이다. 급히 사무실로 갔다. 텅 빈 캐비넷을 보니 피가 역류하며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직원들에게 무슨 사유로 압수해 갔냐고 물어보았다. 사복 경찰관이 사유는 말하지 않고 신분증만 보여주었다고 했다. 텅비어 문이 열린 캐비넷도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4층으로 올라가서 J총장님께 하소연했다. “아무리 사법기관이라지만 기관장인 총장님도 모르게 임의로 압수한 것은 부당합니다. 경찰청장에게 항의전화라도 하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총장님도 조금 전 들으셨다며 마음이 몹시 상한 표정이었다. “자네만 떳떳하면 됐지, 안 그래?”라며 애써 분노를 참으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다음 날 수사과 담당으로부터 출석하라는 전화가 왔다. 수사과로 갔다. 수사관 두 분이 내 서류를 나누어 보고 있었다. 수사관은 나에게 반말로 질문을 했다. 나는 같은 공무원인데 왜 반말을 하느냐고 따졌다. 피의자로 온 사람이 떠드느냐고 했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어 피의자냐며 큰소리로 반박했다. 팀장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큰소리야?”하며 나를 압박했다. 나는 더 크게 “여기가 경찰청 수사과지 어디긴 어딥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맴돌았지만, 그곳에 나를 변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참았다. 심문은 ‘삼성문화회관’ 설계와 감리에 관한 게 주된 내용이었다. ‘삼성문화회관’ 공사와 관련하여 주체는 국가기관인 대학이지만 실지 행위는 총장이 아니고 대학 내 재단인 ‘학술장학재단 이사장’ 명의로 집행한 사실, 사업비도 국가 예산이 아니고 삼성그룹의 60억 원 기부금을 토대로 집행했기에 국가계약법을 적용하지 않고 기업회계법을 적용한 경위를 설명했다. 설계자나 감리자 선정도 능력이 있는 업체를 복수로 지명하여 재단 이사회의 심의와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저금액으로 집행했음을 ‘회의록’까지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러나 내 얘기는 대충 듣는 것 같았다. 다음 날도 같은 내용의 질문이었다. 며칠 뒤에 연락이 왔다. 서류를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서류를 그곳 인편을 통하여 보내주면 좋으련만 서류를 받으러 또다시 가야 한단 말인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압수당한 서류 보따리를 들고 나오는 나의 머릿속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지 않아 이번에는 청문회 참고인으로 출석하라는 도의회의 공문이 왔다. 청문회 내용은 ‘삼성문화회관’ 감리 관련이었다. 서류 가방을 들고 도의회 회의실로 갔다. Y의장과 의원들이 도청 관계자에게 질문하고 내 차례가 되니 의장은 나에게 선서를 하고 질문에 답하라고 했다. 나는 선서를 하고는 답변에 앞서 할 말이 있다며 발언권을 달라고 했다. 의장은 묻는 말에 답변만 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할 말을 했다. “청문회가 시작되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나온 공무원들을 마치 법정에 선 죄인처럼 다루는데 죄가 있는 공무원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훌륭한 공무원도 많고 환경이 불우한 공무원도 많이 있는데 이런 공무원에 대하여는 청문회 시작 전에 포상도 하고 자녀에게 학자금도 전달하고 청문회를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발언했다. 나의 발언이 끝나자 방청석에서 박수가 나왔다. TV 카메라도 나를 향했다. 그 뒤 업무와 관련하여 의장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변했다. 쟁점 사항은 대학에서 발급해준 ‘실적증명서’였다. 내가 발급한 감리실적증명서에는 ‘설계 감리’인데 업체가 도청에 제출한 증명서는 ‘시공 감리’였다. 업체가 서류를 위조한 것이다. 의장과 의원들은 나의 원본 서류를 확인하고 복사도 했다. 그 뒤 해당 업체는 ‘소리문화의전당’ 감리 계약을 취소당했다. 청문회를 마치고 나오자 도청의 L 자치행정국장이 나를 보고는 자기 방에 가서 차 한 잔 하자고 했다그곳에는 안면이 있는 감사실장이 와 있었다. 차를 마시는 동안 나이가 많으신 국장님은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대학에서 오신 분이라서 뭔가 다르다고 생각은 했지만, 의회에서 이렇게 속 시원하게 말한 사람은 처음 봅니다.”며 나를 칭찬했다. J 감사실장은 도청으로 왔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국장님의 칭찬이 그동안의 분노를 달래어 주었다.

 

  요즈음 한 사람의 장관 임명과 사임으로 온 나라가 둘로 나누어져 분노하고 있다. 나라밖 강대국은 무역장벽을 높이 쌓고 기술 보호를 앞세워 개발도상국이 더는 추월하지 못하게 자기방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집안싸움을 하고 있으니 어쩌자는 것인지 한심하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해타산만 생각하지 국가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 전쟁 시에도 미사일이 무서운 게 아니라 국론분열이 문제다. 6·25 때 우리는 이미 경험을 했다. 왜 국민이 분노하고 있을까? 국민이 분노함은 죄에 대한 사면이 아니다. 국민은 힘들게 살고 있는데 그 많은 수사인력을 가지고 너무도 오랜 기간 수사를 하는 중에 국민도 언론도 분열되어 분노하고 있다. 처음에는 특권층의 탈법행위라며 조속한 처벌을 원했던 사람들도 지금은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피의자를 보호하자는 게 아니다. 지난날 존경받던 각계 지도자급 인사들이 재판도 못 받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삶을 포기하여 공분(公憤)한 역사를 국민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분들은 죄에 대한 형벌보다 말할 수 없는 모욕감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시련이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어느덧 나뭇잎에 단풍이 들어 하나둘 떨어지고 있다. 영원한 삶이 있을까?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전직 대통령의 유서가 떠오른다. 이제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도 감싸주며 분노를 달래주어야 한다. 가장 큰 사랑이 용서임을 우리 모두가 깨닫기를 바란다

 

*비수 : 대못을 기찻길에 갈아서 만든 날이 날카로운 짧은 칼로 그 시절에는 ‘아이구찌’라고 불렀음

                                            (2019.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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