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2019.12.11 13:11

한성덕 조회 수:11

죽음 앞에서

한성덕




한 사나이가, 어느 날 왕의 부르심을 받았다. 혹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대역죄가 있나 싶어 겁이 덜컥 났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다. 가장 소중한 친구, 덜 소중한 친구, 가끔 생각나는 친구였다. 혼자 가기가 두려워 세 친구를 차례로 찾아가 함께 가기를 요청했다.

...

먼저, 첫 번째 친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동행을 간청했으나 단박에 거절당했다. 두 번째 친구에게도 부탁했으나 ‘궁궐 문까지는 함께 가겠다.’는 선에서 끝났다. 풀이 죽은 이 사나이는 마지막 친구를 찾아갔다. 기대는커녕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 개미만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뜻밖에도 그 친구에게서 의외의 말을 들었다.

“기꺼이 가겠네. 이 사람아, 죄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두려워하나? 자네는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왕께 말씀 드리겠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비유컨대, 왕은 하나님을, 왕의 부르심을 받은 사나이는 죽음을 뜻한다. 한편, 첫 번째 친구는 이 땅의 재산이나 명예나 권력을 잔뜩 거머쥔 사람이요, 두 번째 친구는 우리의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를 가리킨다. 그리고 세 번째 친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믿음을 뜻한다. 결국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영생할 수 있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이요, 성경의 진리를 말하고자하는 교훈이다.

목회를 하면서 죽음 직전에 처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어떤 사람은, 죽음의 사자가 자기를 데리러 오는 모습이 보였던가 보다.

“안 간다. 안가 이놈아, 네가 누군데 날 데리러 와? 안가, 안가, 안가~”

하면서 한 인간의 가장 처절한 모습으로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그 모습이 아물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젊을 때의 일이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를 선교지로 삼고 합숙훈련 중이었다. 팔당합숙소에서 2,30명이 거주하는데, 자기가 원하는 나라의 선교사로 떠나려는 젊은이들이었다. 그중 40대 초반의 한 젊은이가 한 행동이었다. 사무실을 일일이 돌아보며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일찍 퇴근해서는 농장을 샅샅이 돌아보았다. 뜻밖의 친절 속에 그날 밤 10시경 하늘나라로 갔다.

교회에 열심이던 70대 우리 고모의 경우다. 아침부터 토방과 마루를 쓸고 닦으며, 먼지를 털어내고 방마다 대청소로 분주했다. 농촌의 삶이 그렇듯 깨끗이 청소하고 살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던가? 그날따라 웬일인지 집안을 청소하느라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런 일을 누가 이상히 여겼겠는가? 저녁이 되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자리에 눕더니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탈무드 이야기를 듣고, 인간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죽음을 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살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나 동일하다. 함께 할 수 없는 ‘홀로’의 죽음이요, 죽음 앞에서 만큼은 어느 누구도 교만하거나 거만할 수 없는 ‘평등’이 있을 뿐이다. 어찌 보면 인생이 참 단순한 건데, 삶에서는 복잡한 것들이 얼키설키 뭉쳐있다. 어떤 이들은 다발덩어리를 풀려고 애를 쓰다가 제풀에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사람이 죽을 때 ‘돌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다.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의 장소 곧 탄생한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생명의 출발점이다.”라고. 그렇다. 기독교적인 해석이다. 죽음 너머에 반드시 영원한 삶이 존재한다. 이 사실을 진짜 믿는다면 생명을 어찌 가볍게 여기겠는가? 죽음으로 다 끝난다는 어설픈 진리(?) 때문에 생명을 쉽게 내던진다.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초연히 기다리는 인내, 단순하고 간결하게 사는 지혜, 그리고 순한 양으로 한 해 두 해를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019년의 마지막 달을 보내며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2019.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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