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피아노

2019.12.18 15:53

구연식 조회 수:3

우리 집 피아노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우리 집 피아노는 35년 전에 사들인 고물이다. 그간에는 뒷방에서 먼지만 뒤집어쓰다가, 이제야 임자를 만났는지 영롱한 소리를 내고 있다. 모처럼 집안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아서 나도 덩달아 즐겁다.

 

 내 나이 30대 후반에 나는 교직, 아내는 체신관서에서 근무할 때였다. 셋방살이로 전전하다가 새로 신축한 주택을 처음 구매하여 문패를 달고, 아내 한 달 월급에 가까운 금액으로 피아노를 사들여 거실에 두었다. 자녀들이 서로 치겠다고 순번을 정하면서 딩동댕하는 피아노 소리가 담을 넘어 골목까지 퍼질 때 흐뭇하고 좋았었다. 그 뒤로는 피아노 소리가 뚝 그치더니 이제야 소리를 낸다.

 

 돌 지난 막내부터 유치원 다니는 큰애까지 3남매가 자라던 시절에 큰애와 둘째는 시골 어머니 집에서 자라고 있었고, 막내가 태어나고부터는 새집으로 이사를 하고 아이들을 모두 데려다 놓고 도우미 아주머니를 모셔다 집안일과 아이들을 맡기고 부부는 홀가분하게 출근했다.

 오래간만에 새집에서 식구들이 함께 살고 있으니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마음이 놓이고 아이들 자라는 모습이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그 당시 아이들 과외공부는 집으로 배달되는 일일공부 시험지를 받아서 풀고, 시험지 공급처에서 일주일 분을 채점하여 주면 그 결과를 휴일에 내가 지도하는 것 외에 피아노 집에 보내서 피아노 개인지도를 받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니 어린 아이들에게 일일공부와 피아노 개인지도가 전부로 여기며 부모 몫을 다한 것인 양 했던 게 미안하다. 이제는 모두 다 결혼하여 자기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군산에서 40여 년간 살던 단독주택을 처분하고 전주 아파트로 이사할 때 아내는 아파트에 둘 곳도 마땅치 않고, 운반도 거추장스러우니 피아노를 처분하고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옆에서 며느리가 나의 속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님, 피아노가 옛날 것이어서 고풍스럽고, 조율만 하면 지금도 좋아요. 그리고 율()이가 자라면 피아노 칠 수 있을 때 치도록 그냥 가지고 가요.’ 하니까 아내는 피아노 운반에 따른 특수 운반비를 지급하면서 아파트 나의 서재로 옮겨 놓고 손자가 친다고 하니 아침저녁으로 피아노 닦기에 여념이 없었다.

 

 올해 손자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며느리는 2학기부터 손자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켜야 한다며, 조율사를 불러 조율을 부탁했다. 조율사가 피아노 뚜껑 및 조율 부분의 덮개를 열더니 "사장님, 피아노 구매하시고 한 번도 조율을 안 하셨지요?" 너무했다는 의미로 물었다. 나는 순간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 아이들 교육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했음이 또 한 번 드러나서 반성하고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미안했다. 손자의 피아노 개인지도는 화요일 오후에는 피아노 학원에서 그룹 지도를 받고, 금요일 오후에는 우리 집에 와서 개인지도를 하고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금요일 오후 일정은 오전이나 다른 요일로 바꾸고 손자의 피아노 개인지도 받는 모습과 피아노 소리에서 눈과 귀를 떼지 못하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건반을 튕겨 소리를 내어 할아버지 귀를 즐겁게 해 주어서 이 세상 어느 피아노 연주보다도 듣기 좋다. 그래서 마음이 평화롭고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금요일 오후가 기다려진다. 그러나 마음의 한구석에는 돈 몇 푼 벌자고 어린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겨 놓고 밥은 먹었는가? 학교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피아노는 잘 치고 있는지 살펴보지 못했던 자책감이 들어서 때로는 손자의 피아노 소리가 가슴을 쿵쿵 찌르는 것 같다.

 

 피아노는 우리 집에 문화생활 도구로 처음 들여온 것이다. 나의 부동산 1호는 집이고, 동산 1호는 피아노였다. 그 시절 부모는 모두 직장에 나가고 텅 빈 집에서 어린 아이들의 외로움과 투정거리를 달래줬을 피아노는 내 가족의 일부였다. 부모가 밉고 아이들 나름의 불만 해소거리로 피아노를 때리면 맞아주고, 즐거워서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아름다운 선율로 답해줬을 테니 아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에는 어쩌면 희로애락의 이미지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오늘 손자는 그래도 부모만큼은 못해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빈자리를 지키고 있어 피아노 치는 시간 내내 즐거움을 찾는 것 같아서 좋다. 아이들의 피동적 피아노 치기와 손자의 능동적 피아노 치기가 대조되어 후회와 기쁨이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아직도 나에게는 아이들에게 지난날의 후회를 채워줄 시간이 많다. 멀리서도 무한정으로 보낼 수 있는 부모의 사랑을 때로는 직접 만나서 전해주고 싶다. "할머니, 오늘 저 피아노 잘 쳤지요?" 하면서 손자는 아내의 무릎에 앉는다. 나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율아, 오늘 피아노 재미있게 잘 쳐서 고마워!" 하면서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을 떠올려 본다.

 

 

                                                                                     (20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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