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소묘

2019.12.29 23:30

윤요셉 조회 수:27

머리카락 소묘(素描; drawing)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무릇,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사물을 그때그때 달리 보게 된다. 이 연수원 사감으로 재취업한 지 불과 두어 달밖에 되지 않은 나. 나는 얼굴 반반한(?) 여성 연수원생의 입소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특히, 헤어스타일이 고운 여성 고객일수록 반기지 않는다. 사실 헤어스타일이 외모에 끼치는 영향 적지 않다고는 하지만... . 속된 말로, 내 나이에 비춰 그들이 한낱 그림의 떡이라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여성 고객을 반기지 않느냐고? 그들은 나를 포함한 이 기숙사 관계자들한테 적잖이 수고를 끼치기 때문이다. 나의 분장 업무 가운데는, 부인 넷으로 구성된 ‘미화팀’을 도와, 연수생이 퇴실하면 진공청소기로 각호실과 복도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당기는 일도 포함된다. 대체로, 그들 여성 고객들이 머물렀던 방은, 그들이 마구 흘러 놓은 긴 머리카락과, 일회용 화장품 봉지와, 화장 티슈 등으로 어지럽기만 하다. 얼굴 반반한 여성 연수생들일수록 대체로 뒤끝이 그러했다. 사실 겉보기와 그 가려진 이면(裏面)은 확연히 다른 듯하다. 세면대의 수채가 막히는 일도 잦은데, 볼 것 없이 긴 머리카락이 주범이다. 그러한데도 뒤에 입실한 연수생은 그러한 일로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은, 자신도 별 수없이 머리카락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면서.

   머리카락은, 헤어스타일은 위에서도 이미 이야기하였지만, 외모에 상당히 영향을 끼친다. 머리 모양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나처럼 머리 숱이 많은 이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머리 모양을 바꾸어 볼 수 있지만, 흔히 대머리로 일컫는 독두(禿頭)를 가진 이들은 그리 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들한테는 머리카락 한 오라기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그들한테 머리카락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숫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하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도 벌써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분도 계시리라. 그러기에 예나 지금이나 머리카락은 대단히 소중한 존재로 인식된다. 그러한데도 무심결에 철철 흘리고 다니게 되니… .

   머리카락과 관련된 이야기는 동서고금 있어 왔다.



   1. 내 유년시절의 어떤 머리카락

 내 어머니와 내 손위 누이들의 머리카락은 돈이 되었다. 어머니는 가끔씩 당신의 쪽진 머리를 풀어 면경(面鏡) 앞에서 가위로 쪄내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가위로 찐 머리카락은 다발을 지었다. 어머니는 내 손위 누이들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도 그렇게 쪄서 그 다발에 보탰다. 그리고는 5일장에 내다 팔았다. 그렇게 내다판 머리 값으로 생선 등을 사왔다. 한편, 어머니와 내 누이들은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함부로 버린 일이 없었다. 그것들을 손으로 쓸어 모아 돌돌 뭉쳤다. 경쾌한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들려 오면, 우리는 그 돌돌 뭉친 머리카락을 건네고 엿을 받아 쥐곤 하였다. 그 당시 어린 나는 그렇게 엿과 바꾼 머리카락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러다가 훨씬 나이가 들어 고등학교 시절 경제학 강의를 듣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렇게 모아진 머리카락이 조국의 근대화에 이바지 하였단다. 모두 가발(假髮)의 원료로 쓰였다는 사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가발수출을 하게 되었단다. 구로공단에서 시작된 가발 가공. 그 해 14만 달러의 외화를 획득했단다. 그랬던 것이 그 이듬 해엔 100배가 넘는 155만 달러의 외화를 획득하여 총 수출액의 9.3%를 차지했단다. 해마다 가발산업은 신장되어 국익에 이바지한 바 크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가발은 우리네 효자 수출품목이었던 셈이다. 우리네 어머니, 누님들의 머리카락은 그처럼 가발이 되어 국력신장에 이바지한 바 크다고 할밖에. 조국 근대화에 우리네 여성들의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을 올올 손질한 여성들의 손길이 얼마나 큰 공을 세웠던 거냐고? 나아가, 구로공단 ‘Y.H.’ 가발공장 해고 여성 근로자들로 시작된 소위 ‘Y.H.사건’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2. 고려의 여인 머리카락

… 이보다 앞서 청녕재(淸寧齋) 남쪽 기슭에 정자각(丁字閣)을 짓고 편액(扁額)하여 ‘중미정(衆美亭)’이라 하고 정(亭)의 남쪽 시내에 토석(土石)을 쌓아 저수(貯水)하고 언덕 위에 모정(茅亭)을 지으니, 부안(鳧 )ㆍ노위(蘆葦)가 완연히 강호(江湖)의 상(狀)과 같은지라. 배를 그 가운데 띄우고 소동(小 )으로 하여금 뱃노래와 고기잡이 노래를 부르게 하여 유관(遊觀)의 악(樂)을 마음껏 하였다. 처음 정자(亭子)를 지을 때 역졸(役卒)들이 각기 양식을 가져왔는데, 한 역졸(役卒)이 몹시 가난하여 능히 자급(自給)할 수 없었다.

 이에 역도(役徒)들이 모두 밥을 한 술씩 나누어 먹게 하였는데, 하루는 그 처(妻)가 음식(飮食)을 갖추어 와서 먹이고 또 말하기를, “친(親)한 분을 불러서 같이 잡수도록 하시오.” 라고 하니, 역졸(役卒)이 말하기를, “집이 가난한데 무엇으로써 준비하였소. 남에게 사통(私通)하여 얻은 것인가. 어찌 남의 것을 훔친 것인가.” 라고 하였다. 처(妻)가 말하기를, “모양이 추하니 뉘가 나와 사통(私通)할 것이며, 성질(性質)이 옹졸하니 어찌 능히 도적질하리요. 다만 머리털을 깎아 사왔을 따름이요”라고 하고는 아울러 그 머리를 보이니 역졸(役卒)이 흐느껴 울며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듣는 사람이 슬퍼하였다.

이상 ‘[네이버 지식백과] 가난하고 힘들지만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과 그 친구들을 대접한 역졸의 아내’ 에서 베껴 옴.



  3. 상가승무노인탄(喪歌僧舞老人嘆)

 숙종(肅宗) 임금이 민정(民情)을 살피기 위해 어느 날 밤 잠행(潛行)을 하게 된다. 어느 상가(喪家)에 들르니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상주(喪主)는 노래 부르고 여승(女僧)은 노래 부르는데, 그 곁에서 어느 노인은 탄식하고 있었다. 임금은 노인한테 다가가 그 연유를 물어 보았다. 노인이 대답은 이러했다. 노래를 부르는 이는 자기의 아들이며 가난한 선비였다. 그 선비의 모친이 세상을 뜨고, 노인의 생일이 되었건만, 생일상을 차릴 수 없게 되자, 그의 아내이자 그 노인의 며느리인 이가 머리를 잘라 팔아서 생일상을 장만하였다. 아들은 부친을 즐겁게 해드리고자 노래를 부르고, 머리를 깎은 며느리는 춤을 추는데 마치 여승이 춤을 추는 것 같아 노인은 가슴이 아파 탄식하고 있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숙종은 넌지시 그 아들한테 일러준다. 조만간 별시(別試)가 있을 터이니,한번 더 속는 셈치고 응시해보라고.

 이윽고, 과거가 열렸는데,그 시제(詩題)가 ‘상가승무노인탄’이었다. 가난한 선비는 자기네 이야기인지라 멋지게 글을 적어 급제한다. 숙종 임금은 그와 그의 아내의 효심을 이미 알았던 것이고, 효심 많은 그를 등용코자 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서울 도봉구 미아1동 효자 효부 이야기로 구전되어 온다.

 4. 안동 어느 여인의 머리카락

 1998년, 무연고 묘를 이장하던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원이엄마의 한글편지. 무덤의 주인공은 고성 이씨 가문의 이응태(李應台,1556~1586)로 밝혀졌다. 그의 아내가 쓴 편지와 그의 형이 쓴 시를 통해, 그가 아내의 뱃속에 태아명 ‘원이’를 두고 전염병으로 31살 나이에 세상을 뜬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내가 쓴 편지 내용이다.

 ‘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중략) 함께 누워서 당신께 물었죠.여보,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남도 우리와 같은가 하여 물었죠. 당신은 그러한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이 편지에 더욱 감동을 더하는 것은, 머리카락을 섞어 삼은 미투리다. 머리카락은 원이 엄마의 것으로 추정되며 한지에 싸인 채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한지에도 편지가 적혀 있으나 손상되어,’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 등의 글귀만 해독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쉬이 썩지 않음을 생각해 볼 적에 그녀는 자신의 신체 일부인 머리카락을,먼저 저승길을 떠난 남편한테 편히 신고 가라고 미투리 삼는데 섞었다는 뜻이렷다.



5.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그의 단편 가운데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다. 남편 ‘짐’과 아내 ‘델라’는 가난하였다. 그러나 둘은 너무 사랑하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서로 선물을 뭘로 할까 궁리한다. ‘짐’은 아내가 이쁜 머리카락을 지녔음에도 머리핀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던 터, ‘델라’는 남편이 대대로 물려 받은 시계의 시계줄이 떨어졌음을 안타까워 하던 터. 둘은 서로 몰래 일을 저지른다. ‘짐’은 아내 몰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아내한테 선물할 머리핀을 산다. ‘델라’는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남편한테 선물할 시계줄을 산다. 둘은 서로 가슴 아파 한다. 없어 한다. 상대한테는 이제 아무런 소용도 없는 머리핀과 시계줄.



 이제 내 이야기 정리할 단계다. 머리카락이 하루에 0.2~0.4mm 자란다든가, 그 수명이 2~6년이라든가, 그것이 노후화된 세포들의 주검이라든가, 몸에 쌓인 비소나 수은이나 카드늄 등 중금속의 배출을 담당한다든가, ‘뇌’라는 컴퓨터한테 에러가 발생치 않도록 일정 온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보온과 열 발산을 맡는다든가, 습도에 민감해 습도계에 쓰이며 그 습도계에 쓰이는 머리카락은 15~16세 프랑스 소녀의 금발이 최상이라든가, ‘바늘방석’은 바늘을 꽂아 녹슬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 속을 기름기 있는 머리카락을 채운 방석이라든가… 하는 따위의 사세(些細)한 것들은 나한테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다만, 자기 집에서든 남의 집에서든 연수원에서든 자기 머리카락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관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긴 머리카락을 아무 데다 칠칠 흘리고 다닌다는 것은, 자신의 정조(貞操)마저도 칠칠 흘리고 다닌다고 보는데, 독자님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덧보태자면, 위의 예화(例話)들에서 보여주었듯, 머리카락으로 사랑이나 효심 등을 보여주지는 못할망정 남한테 수고를 끼쳐서야 되겠냐고?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cafe.daum.net/yoongt57)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바로가기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7 계란 한 판 정근식 2019.12.29 6
1126 걷기 김세명 2019.12.29 3
1125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이환권 2019.12.29 3
» 머리카락 소묘 윤요셉 2019.12.29 27
1123 꿈과 희망 두루미 2019.12.30 25
1122 웃음은 초콜릿 2,000개의 에너지를 가졌다 두루미 2019.12.30 1
1121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한성덕 2019.12.31 1
1120 잔고마비의 계절 김용권 2019.12.31 2
1119 온가족이 무탈했던 기해년 이윤상 2019.12.31 6
1118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이진숙 2020.01.01 1
1117 작은 행복 이진숙 2020.01.01 1
1116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정석곤 2020.01.01 1
1115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임두환 2020.01.01 3
1114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김성은 2020.01.01 2
1113 콩나물시루 구연식 2020.01.01 56
1112 비빔밥 두루미 2020.01.02 0
1111 보조개 사과 한성덕 2020.01.02 1
1110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정성려 2020.01.02 0
1109 나쁜 것은 짧게, 좋은 것은 길게 가지세요 두루미 2020.01.02 2
1108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이우철 2020.01.0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