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앵커와 볼펜

2020.01.14 11:01

한성덕 조회 수:4

KBS 앵커와 볼펜

                                                                                                     한성덕

 

 

 

 

  사람이라면 입이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해야' 한다. 여러 뉴스채널 가운데 유독 ‘KBS 9시 뉴스만 본다.’고 하면 곧이듣겠는가? 그 방송국의 뉴스를 제일 많이 본다는 뜻이다.

  뉴스만큼은 꼭 봐야한다고 떠드는 사람이다. 외딴 섬이나 깊은 산속의 후미진 곳, 은둔의 삶이나 어둠이 가득한 골방, 아니면 성자의 꿈을 갖고 속세를 떠나지 않는 한 세상의 흐름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볼펜, 그것은 사람에게 요긴한 필기구다. 볼펜의 역사를 약술하는데 간단치가 않았다. 1883년을 만년필의 원년으로 본다. 미국의 보험외판원인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 있었다. 어느 날 계약서를 꾸미다가 그만 잉크를 엎질러 손님에게 무안을 당했다. 그때부터 그는 필기구 발명에 몰두했다. 그리고 만년필이 나왔다. 잉크가 새지도 않으면서 종이에 쓰는 모세관식 만년필이었다.

  만년필시대에 볼펜을 꿈꾸며 연구하는 이가 있었다. 헝가리의 라디슬라스비로(Ladislas Biro, 1899~1985)와 게오르그(Georg)형제였다. 형인 비로는 조각가에 화가요, 언론인이었다. 그 많은 양의 글을 매일 써야하는 게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취재 중 잉크가 말라버리면 난감하고, 날카로운 펜촉 때문에 종이가 찢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비로는, 그저 ‘술술 나오는 펜’을 생각했다. 그래서 화학자인 동생 게오르그에게 끈적거리는 잉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둘은 새로운 필기구 발명에 헌신했다. 1983, 몇 번의 거듭된 실패 끝에 지금의 볼펜이 탄생했다. 만년필 이후 100(1883)만의 쾌거였다.

 나의 볼펜 역사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64년부터 시작한다. 막내를 업고 행상하시는 엄마를 따라다녔다. 볼펜에 탐욕이 생겨 이웃동네 아저씨 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올 때 슬쩍했다. 그걸 알게 된 엄마는, 회초리로 종아리에서 피가 나도록 때리셨다. 그 혹독한 채찍은 평생을 붙어 다니며 도덕의 길잡이가 되었다. 볼펜 때문에 모자간에 목 놓아 울었던 슬픈 역사다.

  총신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까지 7년의 신학수업은 목사가 되기 위한 정규과정이다. 설교학 교수께서 늘 강조하신 것 중 하나가 볼펜이었다. 설교나 혹은 강의할 때, ‘볼펜을 손에 쥐거나 양복 윗주머니에 꽂지 말라’고 하셨다. 교인들의 시선이 ‘볼펜’에 모아지고, 탁자를 톡톡 치거나 볼펜으로 사람을 가리킬 때는 ‘기분이 매우 상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는 것도 불쾌한데 볼펜은 어쩌겠는가? 지금도 그 가르침대로 실천한다.

  그래서일까? KBS 9시 뉴스 진행자를 유심히 본다. 볼펜을 잠시도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다. 윗선의 지시나 자신의 습성인지, 불안하고 허전한데서 오는 심리적인 현상인지, 초조와 밋밋함에서 들어붙은 의지력인지, 또는 주제별 사안마다 체크하려는 만반의 준비성인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볼펜을 흔들고, 탁자를 두드리며, 더러는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 사람에게 하는 것 같아 왠지 눈에 거슬린다. 그게 법이요, 자연스러운데 나만 바보소리를 하는 건가?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지, 진행자가 볼펜을 내려놓고 필요할 때만 들어야하는지 아리송하다. 세상이 알쏭달쏭해서 내 판단도 흐리멍텅한가? 오늘도 여전히 앵커의 손에는 볼펜이 들려 있었고, 나는 그것에 몹시 신경이 쓰였다.  

                                      (2020. 1.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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