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님의 새해 소원

2020.01.27 23:02

전용창 조회 수:20

큰형님의 새해 소원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설날 큰형님을 찾아갔다. 여느 때 같으면 차례상을 마주하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병원에서 상봉했다. 지난해 7월 초순까지만 해도 나와 통화를 했는데 하순부터 병원 치료를 받으셨다. 병은 어이없게 생겼다. 그날따라 비가 와서 감기 기운이 있었다는데 약주 한 잔을 드시고는 그냥 떨어지셨다고 했다. 담요도 깔지 않은 채 돌침대의 전기장판 온도를 높이고는 깊이 잠에 빠졌는데 돌침대가 과열되어 화상을 입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다음 날 아들 내외가 전화를 받고 급히 와서 전주 시내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온몸에 화기가 퍼졌다는 것이다. 여러 치료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형님은 올해 연세가 구순이시다. 본디 기골이 장대하고 목소리도 카랑카랑하셨다. 부지런하셔서 병이 따라올 수도 없기에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데 5년 전부터 형수님의 치매가 심해져서 형수님은 전주 아들 집으로 오시고 형님은 혼자 그냥 시골에 계셨다. 그러니 두 분이 생이별을 한 것이다. 아들 내외는 아파트에 사니 두 분이 함께 계실 수가 없다. 한 번씩 내가 찾아가면 외로움을 털어놓으셨다. 며느리가 수시로 반찬을 해다 주니 반찬 걱정은 안 하는데 입맛도 없고, 제일 힘든 게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얘기할 사람도 없이 홀로 앉아 있으면 적막강산이라고 했다. 밤마다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고 있노라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고 죽고 싶은 생각만 난다고 했다. 입담이 좋으신 형님이 오죽했으면 그리실까 싶었다.

 

 병실은 큰며느리가 이틀이 멀다고 찾는다고 했다. 며느리는 성이 심 씨인데 나는 조카를 볼 때마다 ‘심청이’ 심 씨라며 칭찬을 했다. 지금은 형수님도 요양원에 계시니 두 분을 챙기려니 눈코 뜰 새가 없을 것이다. 6남매를 두었건만 반은 서울에 있어서 자주 못 오고 가까이 있는 아들딸도 직장에 매어있으니 모든 게 장남의 몫이다. 처음에는 병실 생활을 거부했다. 일어서서 걸을 수도 없는데 자꾸만 집에 가시겠다고 하니 간호사가 두 팔목을 침대에 묶어 놓았다. 내가 가면 얼른 손목부터 풀어 드렸다. 오른손으로 등을 문질러 드리면 시원하다며 좋아하셨다. 그러던 형님도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철부지 어린아이로 변했다. 볼 때마다 마냥 웃고 계셨다. 성경 말씀에는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병상에 계시는 어르신은 모두가 어린아이 같다.

 

  어느 날 병실에 가니 형님이 나에게 손을 뻗어서 내 손을 꼭 잡으셨다. 그리고는 지그시 눈을 감으시며 말씀하셨다.

 “동생, 미안해!

 나는 울컥 눈물이 나와서 창문 너머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와 형님 간에 오래된 앙금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형님, 고마워요. 제가 형님께 못다한 게 많아요.

 나도 두 손으로 형님의 손을 꼬~옥 잡았다.

 

 자금까지 살아오면서 형님과 나는 다정했다. 집안 친척들도 우리 형제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배다른 형제라서 그런지 간간이 기름과 물처럼 하나가 되질 못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은 잠시고 우리 형제는 남부럽지 않게 우애 하며 지냈다. 조카들이 크고 형님에게 손주들이 생기자 조금씩 멀어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져온 곶감을 드렸더니 맛있다며 하나 더 달라고 하셨다. 많이 드시면 변비가 생긴다며 두 개만 드시도록 했다. 토마토 주스도 드렸다. 간병인에게도 드렸다. 명절에 쉬지도 못하고 수고하신다는 인사말과 함께. 병실에는 8병상이 있는데 세 분 어르신은 명절을 쇠러 외박을 나가셨다. 요양병원이라는 게 ‘돌아올 수 없는 강’ 저편에 있는 성곽 같이 보였다. 한 번 들어오면 대부분이 이곳에서 삶을 마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런 요양병원이 몇 백 미터가 멀다고 생기지 않은가?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슬펐다.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형님을 전도했다. 유교로 몸과 마음이 가득한 형님을 명절에 성당에 모시고 가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그래도 그때는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지셨다.

  “형님, 빨리 나으시라고 제가 기도드릴게요.

  “응, 동생 그렇게 해!

 나는 하나님께 형님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드렸다.

  “형님, 오늘 아침 식사는 무엇을 드셨어요?"

  “설날이라고 떡국이 나왔어.

  “형님, 새해가 밝았는데 새해 소원이 무엇인가요?
 “제발 다시 한 번 만 걸어보고 싶어.

 나도 형님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형님은 나에게 걷는다는 게 그렇게 큰 소망이며 행복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다. 잠시 얘기를 나누고 형님에게 말했다.

 “외숙모가 많이 아프시다니 그곳에 한 번 또 가봐야겠어요.

 “동생은 참 바빠.

 형님의 “잘 가!”라는 인사말을 들으며 나는 병실을 나왔다.

                                     (2020.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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