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가 된 작은 거인, 혜선 언니

2020.01.29 00:34

김성은 조회 수:267

번역가가 된 작은 거인, 혜선 언니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김성은

 

 

 

 혜선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손님 대접이 서툰 나는 저녁 메뉴를 정하지 못해 안절부절이었다. 아이들 메뉴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더 조악한 식탁을 마련하고 말았다. 결국 치킨, 피자로 상을 채웠다. 외식을 하자니 언니와의 대화 시간이 짧아질 것 같았다. 언니와 나를 엄마로 만들어 준 초등학생 셋이 안전하게 놀 공간도 필요했다.

 혜선 언니와의 인연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작됐다. 실업계인 서울맹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준비해야 했던 내게 언니는 특유의 발랄함으로 다가왔다.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 1학년이라고 했다. 경쾌한 구두 소리와 막힘 없는 자유의 기운이 언니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듯했다. 나와 유미, 그리고 정훈이라는 남학생으로 우리 팀이 구성되었고, 혜선 언니는 1주일에 한 번 국어를 가르쳐 주었다.

 학교에 올 때마다 언니는 떡볶이며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을 사들고 왔다. 공부하기 전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우리 근황도 들어 주고, 우리가 선망해 마지 않는 대학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이야기해주었다.

 당시에는 신촌 대학가를 중심으로 동덕여대, 덕성여대, 상명대 등이 연합된 '참우리'라는 대학 동아리가 있었다. 나와 같이 특수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학습 봉사 활동을 해주는 마음씨 고운 언니 오빠들의 모임이었다. 혜선 언니처럼 이화여대를 다니는 예쁜 언니들이 많았고,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등에 다니는 멋진 대학생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당당했고 푸르렀다.

 주말이면 언니는 어김없이 맹학교 교실에 앉아 목이 쉬도록 국어 문제지를 읽어 주었다. 상세한 문제 풀이까지 완벽한 수업이었다. 그렇게 난 3년 꼬박 언니의 지도를 받았다. 방학 때는 평일 보충까지 했고, 언니가 못 올 땐 카세트 테이프에 문제지를 녹음해서 보내주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언니의 지인들을 수소문해서 우리의 영어며 수학 공부 시간까지 마련해 주었다. 언뜻 기억나는 인연들만 해도 서넛이 넘는다. 언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특수교육과에 진학할 수 없었으리라. 그랬다면 난 여느 맹학교 친구들처럼 안마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언니는 교문안 개구리로 사는 우리에게 다양한 체험도 선사했다. 수업을 마치면 같이 노래방에도 갔고 피자도 먹으러 다녔다. 목동에 살았던 나는 화곡동에 사는 언니와 물리적으로 가까웠고, 내 동생 영선이는 혜선 언니가 다녔던 명덕여고 후배이기도 했다. 나는 세 자매 중 맏이고 언니는 세 자매 중 막내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항상 넘쳤다.

 1998년 나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유미는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함께 공부했던 정훈이는 재수를 한다고 했다. 혜선 언니는 졸업반이 되어서도 정훈이 재수를 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도 취업 준비하느라 많이 바빴을 텐데 어쩜 그렇게 한결 같을 수 있었을까? 참우리 언니 오빠들 중에 고학년은 많지 않았다. 보통 1~2년 정도 봉사 활동을 하고나면 자연스럽게 수업 횟수가 뜸해지다가 끊어지는 사례가 흔했다. 언니처럼 끝까지 한 팀을 지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수능 시험 전 날에 나는 언니가 수업 자료에 근사한 음악과 함께 녹음해 준 류시화의 들풀이란 시를 반복해서 들었다.

 '맨몸으로 눕고 맨몸으로 일어나라'는 구절이 그렇게 절절할 수 없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수능 시험에 대한 부담을 언니 목소리로 달랬던 것 같다.

 언니 덕택에 난 특수교사가 되었다. 그 동안 언니도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일했다.

 언니 결혼식에서는 여성이 주례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언니가 엄마가 되고서는 근근히 연락만 주고 받았다. 언니가 첫 아이를 출산한 직후 내가 결혼했고, 언니는 부기도 빠지지 않은 몸으로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는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방법을 막라해 치열하게 맞벌이하던 언니는 두 아이 육아를 위해 결국 일을 내려놓았다. 유능한 인재는 전업 주부가 되어 고군분투했고, 오롯이 자기가 될 수 있는 시간이면 맹렬하게 독서를 했다.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에는 눈이 아닌 귀로 독서한다며 내게 오디오북 정보를 묻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나도 엄마가 되었고, 전쟁 같이 살았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다섯 개쯤 빠져나왔고, 숨막히는 순간마다 언니에게 편지를 썼다. 전문 상담 교사인 언니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나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태도를 가르쳐 주었고, 내 하소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전업주부로 지내던 언니가 어느날 전문 번역가가 되었다고 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틈틈이 중국어를 공부했고 어려운 자격 시험에 합격하여 어엿한 전문 번역가로 재택 근무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역시 혜선 언니였다.

장난치듯 웃지만 타인의 아픔을 사려 깊게 살핀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자신을 갈고 닦는다감수성이 예민하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어여쁜 그녀가 내게 촉감 좋은 외투를 선물해 주었다. 어디 내가 받은 것이 외투뿐이겠는가? 아쉬운 마음으로 언니와 작별했다. 언니 앞에서는 유난히 더 실수를 하고 어설퍼지는 내 손을 부끄러워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2020.01.29.)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67 나무난로 앞에서 윤근택 2020.01.22 31
1066 엄마의 일기 한성덕 2020.01.22 21
1065 수필가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하광호 2020.01.22 16
1064 반성문 쓰는 아버지 김학 2020.01.22 16
1063 장부의 일서는 중천황금 김창임 2020.01.22 24
1062 백반증 김창임 2020.01.22 41
1061 친구다운 친구 한성덕 2020.01.25 5
1060 괌에서 온 편지 김성은 2020.01.25 13
1059 그랭이질 전용창 2020.01.26 134
1058 나무난로 앞에서 윤근택 2020.01.27 36
1057 큰형님의 새해 소원 전용창 2020.01.27 20
1056 청매화차 백승훈 2020.01.28 67
1055 일주일, 그 길고도 긴 나날들 김학 2020.01.28 5
» 번역가가 된 작은 거인, 혜선 언니 김성은 2020.01.29 267
1053 샹하이 대첩 이창호 2020.01.29 6
1052 가설극장 구연식 2020.01.29 74
1051 일복 김현준 2020.01.29 68
1050 흰 쥐의 해, 2020 경자년 김학 2020.01.30 7
1049 수돗물 하광호 2020.01.30 80
1048 내 안을 채운 것들 한성덕 2020.01.3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