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쥐의 해, 2020 경자년

2020.01.30 00:50

김학 조회 수:7

흰 쥐의 해, 2020 庚子年

                                                                                                                             김 학

 

 

 

 

 2020 경자년이 밝았다. 쥐의 해, 그것도 흰 색 쥐의 해가 밝은 것이다. 쥐는 미래의 일을 예시하는 영물이자, 재물과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쥐를 본 게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다. 요즘엔 사진이나 그림으로나 쥐를 보지 실물을 보지는 못했다. 옛날 시골에서 살 때는 소나 강아지, 닭과 같은 가축 못지않게 집안에서 쥐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밤마다 천정에서는 쥐들이 운동회를 하는지 시끄럽게 떠들어 쉽사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으레 천장에는 쥐의 오줌자국이 그려져 있었고, 아무데서나 쥐똥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마당에서도, 뒷간에서도, 광속에서도 자주 마주치곤 했었다.

 학교에서는 쥐를 잡아 꼬리를 가지고 오라고 숙제를 냈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오죽하면 정부는 매달 쥐 잡는 날을 정하여 집집마다 쥐약을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많던 쥐가 요즘엔 구경하기도 어렵다. 그 쥐들이 어디로 갔는지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가야지역 창고형 고상 가옥에 쥐와 고양이가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곡식창고에 올라오는 쥐 두 마리를 노려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보아, 예나 지금이나 곡식 창고나 뒤주의 주인은 쥐였던 모양이다. 통일신라 이후 쥐는 십이지(十二支)의 하나로 능묘(陵墓), 탑상(榻床), 불구(佛具), 생활용품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들에서 수박이나 무를 갉아먹고 있는 쥐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신사임당이 그린 ‘수박과 쥐’ 그림이 대표적이다. 예로부터 수박은 씨가 많다. 그것은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쥐와 흡사하다.

 쥐는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지닌 동물이다. ‘쥐가 배에서 내리면 폭풍우가 온다.’거나, ‘쥐가 없는 배는 타지 않는다.’는 속담에서도 쥐의 신통력을 깨달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쥐는 다산의 왕이다. 요즘처럼 출산율이 낮을 때 경자년 쥐의 해를 맞았으니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여 아들딸을 많이 낳았으면 좋겠다. 인구라도 늘어야 나라의 장래가 보장될 게 아닌가?

 고대에는 쥐가 신들의 봉헌물로 태녀신에게 바쳐졌으며,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호루스와 이시스에게 바쳐졌다. 그리스에서는 아폴로에게 바쳐졌는데, 그가 의술(醫術)의 신이라는 것에서 쥐는 병의 치유와도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불교의 아함경(阿含經)에는 인간의 일생을 갉아먹는 흰쥐와 검은 쥐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쥐는 시간의 상징이다. 또 유교에서는 간신, 수탈자에 비유되는 부정한 동물이 바로 쥐다. 그러나 힌두교에서는 조금 색다르게 쥐를 사려 깊은 동물, 예견(豫見)을 나타내는 동물로 해석한다. 하지만 쥐는 재물‧다신‧풍요기원의 상징이며, 미래를 예시하는 영물임에 틀림없다.

 사람에게 쥐는 유익한 동물이 아니다. 생김새가 얄밉고, 성질이 급하며, 행동이 경망스럽고, 좀스럽다. 진 데 마른 데 가리지 않고 싸돌아다니며 병을 옮기고, 참을성이 없다. 더욱 혐오스러운 것은 양식을 약탈하고, 물건을 쏠아 재산을 축내니 쥐는 백해무익한 동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쓸모가 있으니, 의약의 실험동물로 활용되어서 사람의 건강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함경도지방에는 불과 물의 근원을 알려준 생쥐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주 옛날 세상이 만들어질 때 미륵이 태어나 해와 달을 이용해 별을 만들고 자신의 옷을 만들었다. 그런데 물과 불의 근원을 알지 못해 날곡식을 먹었단다. 그러자 생쥐가 물과 불의 근원을 미륵에게 알려주는 대가로 세상의 모든 뒤주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황금구슬> 이야기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쥐가 나온다. 잉어를 놓아준 대가로 얻은 황금구슬로 부자가 된 할아버지할머니가 나쁜 할머니에게 속아 황금구슬을 도둑맞자 그 집의 개와 고양이가 황금구슬을 되찾으려고 나쁜 할머니 집에 가서 대왕 쥐를 잡아 정보를 캐내 구슬을 찾았다고 한다. 쥐는 비록 몸집은 작지만 어느 곳이나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동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쥐를 이야기할 때 rat(쥐)와 mouse(생쥐)로 표현한다. 보통 쥐는 더럽고 징그러운 동물로 여긴다. 그러나 생쥐는 귀엽고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쥐가 개나 고양이처럼 애완동물은 아니지만 사람과의 인연은 꽤나 깊다. 그런 쥐를 자주 볼 수 없어서 아쉽기 짝이 없다. 흰 주의 해인 2020 경자년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자못 기대가 된다.

                                                               (2019.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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