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 세상을 바꾸다

2020.01.30 13:32

전용창 조회 수:73

수필이 세상을 바꾸다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용창

 

 

 

 기침 감기가 나가지 않아 또다시 병원에 갔다. 이번에는 나도 지쳤다. 의사 선생님을 배려하여 질문 메모지를 보여드렸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의사 선생님은 메모지를 읽어보더니 마스크를 벗고 웃으셨다.

  “지금까지 많은 환자를 보았지만 선생님 같으신 분은 처음 봅니다.

 

 지난해 말부터 대수롭지 않은 감기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한 달 동안 동네 병원 이곳저곳을 다녔건만 그때뿐이고 자꾸만 재발했다. 근래에는 몇 해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도 않고, 걸려도 이렇게 오래간 적은 없었다. 약이 떨어져서 어제도 병원에 가려고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위층에 사는 분을 만났다.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어디를 가시냐고 묻기에 병원에 간다며 뭐 이런 감기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일주일이 지나도 낫지 않으면 감기가 아니라며 호흡기 전문내과를 소개해 주셨다. 그 병원 원장님과 남편이 J 병원에서 같이 근무했다며 남편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나는 얼른 받아 적었다. 내가 빨리 적을 수 있었던 것은 어깨에 채권 가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방 속에는 달랑 책 한 권과 수첩만 있다. 어디에서든지 지루하면 책을 읽고, 글감이 떠오르면 즉시 적어 두기 위해서다.

 

  의사 선생님께 건넨 메모지에는 소개하신 분의 인적사항과 나의 병력 그리고 그동안의 치료과정을 간략히 적어 두었다. 오후에 접수한 사람만도 수십 명이 넘었다. 의사 선생님은 메모지만 보면 나의 증세를 다 알 수 있으니 말을 적게 해서 좋고 환자인 나는 간략하지만 중요한 증세를 다 기록했으니 안심이다. 처음에는 그분의 남편이름만 적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다시 다른 메모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병력도 적었다. 즉흥적인 발상이었지만 의사 선생님과 대기하는 환자분 모두에게 시간을 단축해 주는 기여를 했다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좋았다. 호명을 하여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로 이곳저곳을 진맥했다. 그리고는 ‘폐기종’ 같다며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다시 정밀 검사를 하자고 했다. 이틀분의 처방전만 받고 나왔다. 오늘 다시 찾아 X-ray 사진도 찍고 폐활량 검사도 했다. 진료실에 들어서니 또다시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메모지 없어요?

 "어제 드린 게 전부인데요.".

  나도 웃고 선생님도 웃었다. 검사결과 나의 병명은 ‘폐기종’으로 확진되었다. 분진과 공해가 폐 일부에 축적되었는데 이 병은 완치는 안 된다고 했다. 아직은 심하지 않아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유산소 운동도 하며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100세까지도 거뜬히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100세요?”했다. 의사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병이 다 나은 것 같이 기뻤다. 아마도 내 진료 카드에는 ‘메모지 건넨 환자’라고 기록되었지 싶다. 돌아오는 길에 고희까지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내가 수필의 길에 입문한 지도 어언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쓴 글 속에 비친 나의 모습과 현실에서의 삶이 다르지 않으려고 노력도 했다. 함께 공부하는 문우님의 글을 통하여 힘들게 살아온 역경도 보았고, 아름다운 삶도 보았다. 어린 나이에 연변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피난 내려와 힘든 세상을 살아왔건만 이곳은 자유가 있어 행복했다는 은퇴 목사님,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다시 현해탄을 건너오셨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여 끼니 거르기가 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어린 자식들의 장래를 위하여 원거리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장수를 하시며 자녀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고 그리운 어머니를 한시도 잊지 못한다는 효자 선배님, 8개월간 의식이 없이 사경을 헤매는 사모님을 위하여 밤마다 눈물로 기도하신다는 장로님께서는 그나마 한 편의 글을 쓰며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나날을 위로한다고 했다. 미수 기념으로 5회 차 서양화개인전을 열고, 처녀 시집과 수필집을 전해 주시던 열정의 J 문우님은 볼 때마다 존경스럽다. 10여 년을 하루같이 만 보에서 이 만보 걷기를 하며 건강도 챙기고 글감도 찾으신다는 K 문우님도 존경스럽고, 지역 사법기관의 수장으로 은퇴하셨음에도 언제나 소년처럼 다정다감하신 K 문우님, 매주 수업시간마다 풍성한 다과를 제공하시고 지도 교수님께는 건강음료를 챙기시는 천사의 교장 선생님도 존경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 정신이 있어야 좋은 글을 쓴다며 16권의 수필집을 펴내신 열정의 K 교수님, 대학 부총장을 역임하시고도 형제자매처럼 다정다감하게 지도해주시는 J 교수님은 모두가 나의 스승이며 존경하는 분이다.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모두가 내 곁에서 떠났다. 그럴 때마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의 삶을 그리는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랬다.

 

  더 많은 문우님들의 소중한 삶을 칭찬해야 마땅하나 E 문우님의 한 편의 수필이 우리 고장에 기여한 업적만은 꼭 밝히고 싶다. 수필로 우리사회를 밝게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전주시 ‘평화동’이다. ‘평화’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평안함과 아늑함을 준다. 그러기에 이곳에 산다는 게 참으로 자랑스럽다. ‘평화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을 찾아보니 우리 동네 말고는 경상도에 한곳 있었다. 그렇게도 좋은 이름이 있건만 오랫동안 이곳을 지나는 시내버스 상단에는 ‘교도소 행’이라고 쓰여 있었다. 물론 우리 동네 끝자락에 교도소가 있긴 하다. 그러니 아무도 여기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좋은 이름도 얼마든지 있는데 ‘교도소행이라는 노선 이름을 안타깝게 여긴 E 문우님께서 언젠가 지역신문에 ‘교도소행’이라는 노선 이름을 ‘평화동 종점’으로 바꾸라고 기고했다고 한다. 관할청은 훌륭한 아이디어라며 받아들여 지금은 그 많은 시내버스가 ‘평화동 종점’이라는 멋진 이름을 달고 달린다. 내가 병력을 간략히 메모지에 적어서 의사 선생님께 보여 드렸더니 그렇게 반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그만 메모지에 수필의 단락을 연상하며 기록한 글이 의사 선생님에게도 환자에게도 기쁨을 주었으니 수필의 위력이 세상을 바꾼 게 아닌가? 이런 내용이 모든 병원에 알려져서 메마른 세상에 단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0.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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