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치기해변의 우수

2020.01.30 18:04

곽창선 조회 수:8

광치기해변의 우수

 신아 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 창 선

 

 

 

 

 

  묵고 있던 원룸에서 가까운 거리에 일출의 명소 광치기해변이 있다. 넓은 해역에 안겨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와 이웃하고 있다. 이곳은 전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축제에 참석하려고 불원천리하고 찾는 곳이다. 길가에 넓은 공간이 있어 접근하기 편리하고, 제주올레길 1코스의 마지막이요, 2올레길 출발지점이다.

 

 광치기해변하면 무슨 뜻일까 의문이 들어 살펴보니, 원래 관치기해변에서 유래된 말이다. 속설俗說에 의하면 거친 바다에서 재난을 당한 어부들의 시신이 이곳으로 떠내려 오면 주민들이 관을 가지고 와서 수습하던 곳으로 관치기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억센 제주사투리 억양으로 '광치기'로 발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책에는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해변이라고 해서 썬 비치(sun beach)라 부르기도 한다.

 

 오랜만에 성산포는, 하늘이 맑고 바다는 잔잔해서 나들이하기 좋았다. 올레길 따라 광치기에 가려고 숙소를 나섰다. 해변에 깔린 모래밭은 육지와 다르게 검은색을 띠고 있어 낯설었다. 현무암이 오랜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입자가 검은색을 띠는 것이다. 밟히는 촉감이 사각사각 정겨웠다. 해역에서 부는 미풍은 겨울답지 앉게 시원하고 쾌적하여 올레길 걷기에 십상이었다. 매일 두세 시간을 버스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답답하고 긴장하게 되는데, 모처럼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며 한가롭게 걷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모래밭을 걷기란 쉽지 않은데 아내는 앞서 가며 모래성도 쌓고 하트도 그려가며 파란 이끼가 낀 바위에도 오르고 내린다. 짓궂은 말괄량이 모습이다. 스치는 젊은 아베크족들이 비웃듯 지나친다.

 

 지형은 용암이 흐르다 굳어진 지질구조로 물이 들고 날 때면 물에 가려졌던 모습들이 속속 들어나 아름다움이 한껏 돋보였다. 넓은 바위에 낀 녹색 이끼가 연출하는 퍼포먼스는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 시켜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성산일출봉 위에 뜨는 태양과 바다를 한 폭의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는 곳이다. 또한 일몰의 모습과 한라산을 함께 즐길 수 있어 가성비 만점이다. 더욱 이곳 넓은 모래 위에서 승마 체험을 즐길 수도 있다. 말에 올라 해변을 달리는 사람, 마차를 타거나 조랑말을 타고 마부가 끌고 모래 위를 걷는 모습은 참 이채로웠다.  

 

 그러나 이렇게 만인의 사랑을 받는 곳이 아픈 상처로 신음하고 있을 줄이야? 인파가 모인 곳을 거슬러 오르자 4.3 희생자 추념탑이 세워져 있었다. 1948년 음력 925일 성산, 구좌, 표선, 일대에 거주하던 400여 주민들이 처형된 현장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무참히 처형된 그들을 바다 속에 수장하고 떠난 뒤, 파도에 밀려드는 시신들을 외국 순례자들이 수습했다는 슬픈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순간 이곳에서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희생된 넋들의 구슬픈 영혼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음습한 기분이 들었다.

 

 제주 곳곳에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우수憂愁가 흐른다. 그것은 지금껏 풀어내지 못한 4.3 사건의 응어리 때문이다. 484월 헌정사상 첫 국민 투표가 일제히 실시되었으나 제주도에서는 남노당의 폭동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정부군이 진압에 나서며 제주 전역은 일시에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수많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주지 못하고 응어리진채, 한이 되어 도처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 상황을 어찌 왈가왈부할까만 냉정하게 당시 상황을 공유하고서 용서와 화합으로 4.3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전기가 마련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6.25 전쟁 당시 낮에는 태극기, 밤에는 인공기를 사립문에 걸기를 반복했다는 웃지 못할 아픔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살기위한 몸부림이었다. 무슨 영문으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고 죽였으니 무슨 원한이 존재할까? 그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저지른 과오 일 뿐이었다. 누구의 과오가 아닌 우리의 과오일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적 사고는 식을 줄 모르고 우리 곁을 떠날 줄 모르니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광치기해변에서 이념의 삭막한 대결이 핏빛으로 아롱진 곳이 성산일출봉을 마주 보고 있는 새벽바위다. 초록과 검정을 공유하며 그날의 슬픈 사연 하나하나를 또렷이 품고있는 슬픈 바위다. 그러나 우리는 신기하고 아름다움에 취해 환호하는 사랑의 대상이다. 이렇게 즐기는 달달함과 기억하려는 아픔이 혼재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잔인한 추억은 지워지고 만인의 사랑 받는 공간으로 모두들 바다에 들고나며 핏빛에 젖었던 모래를 벗삼아 즐기고 있었다. 저들은 이곳의 아픔을 알고 있을까? 이끼 낀 바위를 배경삼아 추운 날씨에도 수영복 차림의 남녀들이 여러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아마도 광고모텔 같다. 오늘도 변함없이 순례자들의 발길은 끊일 줄 모르고 이어지며 해변은 더욱 활기를 찾고 있다.  

 

〈관치기 상념〉

 

여기 겨울 햇살이

칠십여 년이 지난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거북이 등처럼 눈을 가진 바위들이

파릇파릇 떨던 숱한 목숨들을 기억하고 있다.

 

메마른 나무줄기 끝에

철 지난 꽃잎 몇 조각

핏빛 태양 속으로

목숨을 걸 듯 숨어들었다.

 

해변은 말이 없고

우수가 들불처럼 들고 나며

바다엔 그날의 혼백인 양

갈매기 무리지어 나른다.

 

                                                     (2020.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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