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의 품위

2020.03.15 23:45

한성덕 조회 수:5

성악가의 품위

                                                               한성덕

 

 

 

 

  사람은 누구나 취미와 특기가 있다. 사람의 얼굴이 다른 것만큼이나 퍽 다양하다. 어떤 것을 잘해서 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서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여러 취미 가운데서 노래 부르는 걸 즐긴다. 잘해서라기보다 좋아서 하는 편이다. 그래서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마음이 상쾌하고 신이 난다.

  모든 노래들이 다 좋아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근래에 각 방송사들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여러 성향의 노래경연대회를 연다. 모 방송사의 팬텀싱어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대회가 생겨났다. 난 어떤 장르보다 성악가의 노래를 좋아한다. 팬텀싱어가 그리워 눈을 부라리고 기다린다.

  요즘은, 트로트(Trot)풍의 노래가 내 마음을 파고든다. 예전엔 근접도 못하던 노래였다. 트로트의 대부분은, 애잔하고 슬픔만을 노래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노래가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는 노래를 실어 나르는데 까칠한 세상을 살았으니 어찌하랴? 그래도 요즘은, 트로트의 구슬픔이 신나는 노래로 바뀌어서 들을 만하다. 노래에서 특히 꺾기의 묘미는 한국인만의 멋이 아닐까 싶다. 한국인의 한국인다운 한국적인 맛깔이 노래에 흠뻑 배어있다.

  실은, 위대한 성악가 중 한 사람에게 할 말이 많다. 그를 좋아하는 열렬한 팬인 탓이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소름이 송송 돋아난다. 그는, 스페인 출신으로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했다. 한 사람이 두 성부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통에 더 위대한 가수가 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세계적인 성악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한 실력자여서 ‘위대하다’고까지 표현했다. 좋은 체격과 수려한 외모, 풍부하고 힘이 넘치는 가창력, ‘천상의 소리’라는 찬사, 무대를 집어삼킬 것 같은 역동의 연극적 재능, 그리고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이미지를 가졌다.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조물주의 작품이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은 공평하지 않다’고 투덜거릴까? 그야말로 20세기 후반의 가장 인기 있는 세계최고의 테너 가수다. 다양한 레퍼토리의 섭렵과 뛰어난 연기력은, ‘오페라의 제왕’이라는 말에 손색이 없다. 16세부터 반세기가 넘도록 쉼 없이 음악적 활동의 영역을 넓혀왔다. 2013년을 기준으로 144개의 역할을 소화하고, 3,687번이나 노래하며, 526회의 연주에서 지휘했다. 그리고 수많은 리코딩(recording)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몇 번 방문해 국내 팬들과도 친숙하다. 그중 ‘그리운 금강산’은 한국인 성악가보다 더 한국적인 발음으로 정확하게 불러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리고 어떤 성악가도 따라갈 수 없는 111가지 역을 소화하며 연기하는 대단한 힘의 소유자요, 무대를 압도하는 사람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더 이상은 지면부족으로 생략하기로 한다.

 그는, 다름 아닌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1941년 만79). 루치아노 파파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명성을 떨쳐왔다. 그만한 부와 명예와 영광을 한 몸에 받은 이도 드물다. 그토록 아름답고 찬란한 역사에서 무엇이 부족해 헛된 짓을 했을까? 30년간 여성 클래식 예술가들에게 성폭력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폭로에 휩싸였다. 그런 의혹을 반년동안 부인하다가 결국은 지난달 25일 사과문을 냈다.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무대에서 도밍고를 ‘퇴출시키자.’고, ‘아예 이참에 걷어내자’고 야단들이다. 그를 좋아했던 팬의 한 사람으로서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 외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성경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또는 그의 찬란한 영광이 겸손을 가렸는지. 교만하면 결국 콧대가 납작해진다. 이런 걸 볼 때마다, 거만과 교만은 노래뿐 아니라 그 어떤 자리에서도, 품위를 잃고 추락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2020. 3.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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