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우러 13일의 행복

2020.03.17 23:11

한성덕 조회 수:3

313일의 행복

                                                          한성덕

 

 

 

 

  서양인들은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하게 여긴다. 그래서 고층빌딩 중 80%13층이 없다. 병원의 13호실, 공항의 13번 게이트, 비행기 좌석의 13번 열, 그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주소의 13번지가 그렇다. 이런 곳은 ‘13’이라는 숫자가 아예 없거나 가끔 눈에 띨 정도다.

  13일의 저주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대로부터 전해오면서 구구한 설들이 많다. 그 중 하나는 기독교에서 나온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목요일이요, 12제자와 선생님까지 13명이었다. 유다가 로마군사들과 예수님을 팔기로 모의하고, 13번째 만찬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튿날 예수님은 로마군사들에게 처형되었다. 그때가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숫자에 민감하고, 미신을 섬기는 자들은 13일의 금요일을 ‘저주의 날’이라고 떠벌인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허지만 예수의 죽음을 미신이나 신화로 치부하는 것만큼은 절대로 반대한다. 그토록 싫은 13일의 금요일이, 올해만큼은 나의 날이 되어 무척 행복했다.

  우리의 삶에서 ‘3’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를 아는가? ‘복된 숫자, 신성한 숫자, 기본적인 숫자, 그리고 안정적인 숫자’라고 한다. 1953313, 그 좋은 3을 세 개나 물고 태어났으니 기쁘기 그지없다. 나 스스로 ‘복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한다. 오늘따라, 부모님을 알고 제대로 된 생일에 감사했다. 6.25한국전쟁’ 중에 태어난 우리 또래들이 얼마나 많이 죽고, 고아로 자라나 생일도 모르는 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 와중에서도 자식이 태어난 날을 양력으로 올려주셨으니, 실로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이 크고도 감사하다.

  행복이 늘 곁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온갖 궂은일들이 진드기처럼 들어붙어 있다. 불행의 눈물을 닦아내고, 슬픔의 탄식을 걷어내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산다는 게 말같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행복한 날들이 있어 사는 맛이 쏠쏠하다. 313일 금요일, 정성을 다한 아내의 점심식탁에서 행복이 흘러넘쳤다. 아내의 그 짧은 식사기도에서 나와 함께 살아 온 것을 감사했다. 가슴은 먹먹하고 콧잔등은 시큰거렸다. 그렇게 산 세월이 어느덧 40년이 아닌가?

  13일의 금요일 저녁이었다. 선교사인 큰사위는 현지에 있고, 딸이 먼저 나와 우리와 함께 있다. 작은 딸도 신랑과 나란히 왔다. 산세의 시작점인 한적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별미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아내는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준비하고, 큰 딸은 탁구화를, 작은 딸은 떡 케이크를 만들어 왔다. 작은 딸 내외가 맛깔나고 품위 있는 떡집을 차린다며, 딸은 쌀로 된 케이크를 배우러 다닌다. 첫날에 만든 케이크를 사진으로 보냈는데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 딸의 첫 작품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색상이며 케이크 위의 꽃모양이 얼마나 섬세한지 흡사 생화같았다. 아빠생일이라고 그 케이크를 만들어 왔다. 얼마나 앙증맞은지 탄성을 자아냈다. 앙금으로 만든 꽃은, 꽃단장을 한 선녀들이 떡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느낌이었다. 아까워서 이걸 어떻게 먹으랴? 진짜 탄성은 따로 있었다. 양쪽엔 ‘경축’, 밑에는 ‘자녀일동’이라 쓰고, “성덕 탄신 축하”라는 초미니 프랑 카드가 케이크위에 꽂혀있었다. 그것을 양손으로 가만히 당겨보란다. ‘오메, 무슨 배춧잎이야?’ 하는 순간, 만 원짜리 지폐가 보이는 게 아닌가? 모두들 소스라치게 놀랐다. 돈이 줄줄 따라 나온다. 급기야는 일어섰는데도 계속 나와 탄성, 또 탄성이었다. 60여 년만의 생일에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보긴 처음이었다기쁨이 퐁퐁 솟아나고, 감격의 눈물이 아른거리며, 자식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313일의 금요일, 세 여성들이 한 남자의 눈시울을 흥건하게 한 날이었다. 아내와 두 딸의 사랑이 남은 생애를 더 빛나게 하고, 온 누리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은 내 안을 촉촉이 채웠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밤이었다.

                                               (2020. 3.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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