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2020.03.19 13:09

전용창 조회 수:12

산다는 것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나도 울고 하늘도 울고, 아 슬프다.

 ‘박경리 작가’의 유고시집을 읽는 동안 ‘DJ DOC’의 「여름 이야기」 노랫말이 떠올랐다. 이십여 년 전이다. 막내가 교통사고로 넉 달 반 동안 J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간호를 하던 어느 날 밤, 아들이 잠자는 것을 보고 나도 바닥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보니 아들이 병상에 앉아서 깁스한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멀쩡한 다리였는데….’라며 애통하고 비통함을 달래려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들을 껴안고 위로하며 나도 울었다.

 “가현아, 아빠가 차도 팔고, 집도 팔아서라도 꼭 낫게 해줄게.

 그 무렵 아들의 교통사고 이전에 나를 힘들게 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아파트를 명도해달라는 통지가 그것이다. 어머니가 고관절 골절상을 당하여 보행에 지장이 많아 주택인 집을 전세로 내놓고, 그 대신 경로당이 가까운 넓은 아파트를 전세로 와서 불과 1년이 지난 때였다.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사업가인 집주인이 부도가 나서 그만 경매로 넘어간 것이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돈도 잃고 아들의 아픔도 있었으나 그래도 나의 고통 기간은 짧았다.

 

 그런데 대문호 ‘박경리 작가’의 삶은 너무도 한 많은 삶이었다. 어머니는 22세 나이에 네 살 연하인 아버지와 결혼을 했는데, 아버지가 조강지처를 버리고 재혼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평생을 홀로 사셨다. 그나마 외동딸이라도 있었으니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신 것 같았다. 작가의 삶도 어쩌면 어머니의 삶과 똑같았다. 여고를 갓 졸업하고서 일찍 결혼했다. 신혼의 기쁨도 잠시이고 결혼 4년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여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그 역시 외동딸과 함께 외로운 한평생을 살았다. 그런데도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중략)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라며 청춘을 예찬했다. 나의 젊은 날도 짧았다. 그렇게 빨리 지나갈 줄은 몰랐다. 참 아쉽다. 신혼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으니 돌연 가장이 되어 신혼을 즐길 수도 없었다.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는 작가가 이승에서 마지막 남긴 고별 시라고 한다.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 나를 지탱해 주었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아마도 유고시집 전체에서 남기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한 편의 시에 모두 담긴 듯했다. 이 시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구절이 유고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작가가 얼마나 가난했으면 노년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았다고 했을까? 그가 존경하는 「어머니의 사는 법」이 14쪽을 차지하는 장문의 시다.

 

 ‘내 것 아니면 길가 개똥같이 보인다 / 단단한 땅에 물 고이고 / 어머니는 돈을 아끼지 않을 때가 있었다 / 절에 시주하는 일 / 길 가다가 / 다리 놓는 공사라도 마주치게 되면 / 상당한 금액을 희사했다. / 죽어서 삼도천 건널 때도 / 도움을 받는다고 믿는 까닭이다 / 말소드레기 일으키는 것들 / 상종 안 한다는 말도 했다(중략) / 어머니를 화장하고 돌아온 날 그 밤 / 아무도 없이 혼자 남은 밤 / 외등을 켜 놓고 / 나는 뜰에서 돌을 깔았다 / 경국사 뒷산이 / 시꺼멓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젊은 날 강인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온대간데 없고 한 많은 세상을 마감하신 어머니, 화장을 하고 돌아와서는 마당에 돌을 하나둘 놓으며 인생 무상함을 느끼는 작가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모녀간에 힘들게 살아온 삶이 이렇게도 안타깝게 종착역에 도달한단 말인가? 이렇게 애끓는 삶도 사는 것인가?

 

  요즈음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코로나’ 재앙으로 온 세상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확진 환자와 사망자 숫자가 톱뉴스로 장식된다. 마지막 삶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밤새 코로나가 귀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유언도 있고,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도 싶었을 텐데 격리된 상태에서 아무 말 못하고 밤새 떠나가고 있다. 얼마나 쓸쓸하고 애통한가? 치료의 시간을 주지 않으니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남겨줄 것이 없는 사람은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남기고 떠나겠지. 몸이 허약하고 나이 든 어르신들의 치사율이 높다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한 평생 잘 살고 간다고 생각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오늘 하루도 가족과 함께 무탈함이 행복이려니 싶다.

 

 호흡기 질환이 있어서 집에만 있으려니 하루가 지루하다. 베란다를 바라보니 군자란이 예쁘게 피었다. 작년에도 피었는데 또 피었구나. 꽃들은 나를 보며 마음이 변했냐며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 창문을 열고 나갔다. 잎사귀와 꽃대를 어루만져 주었다. 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우느라 수고가 많았다며 속으로는 칭찬을 해줬다. 무심코 꽃을 세어본다. 하나의 꽃대에서 12개의 꽃이 나왔다. 12남매나 되는데도 온 가족이 엄마 품에 함께 모여 사니 얼마나 행복하니? 그럼 나도 행복하지 않은가? 내 곁에는 지금도 두 아들이 있다. 큰아들은 요즈음 아빠가 집에만 있으니 행복해하고, 막내도 취업 준비로 집에 있으니 행복하다. 큰아들의 장애도 막내의 취업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는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제 지구촌은 한 가족이다. 병원체는 국경을 넘나들었다. 핵무기나 미사일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그 작은 게 뭐라고 온 세상을 뒤흔든단 말인가? 나 혼자만은 살 수가 없고, 서로를 배려하고 가진 자가 약자를 보살펴 주어야만 진정으로 함께 살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다.

 

                                                                  (2020. 3. 19.)

*말소드레기 ; 분란을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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