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약한 아빠를 보면서

2020.04.11 03:23

최정순 조회 수:1

병약한 아빠를 보면서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최 정 순

 

 

  열채 남짓한 슬래브 지붕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에서 살았다. 마당에서 개짖는 소리며 방문 여닫는 소리, 심지어 부엌에서 찌개 끓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럼에도 골목이 달라서 서로 오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옥상으로 올라가면 대문보다도 더 쉽게 담을 넘을 수 있었다. 멀리 남쪽으로는 모악산 송신탑이 보였으니, 그때는 미세먼지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남편, 애들 다 학교 보내고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빨래를 널려고 옥상에 올라가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영경이엄마, 종대엄마, 나까지 셋이서 접시가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시쳇말로 노가리를 풀다 내려오곤 했었다.  

 

  엄마들 나이가 비슷하면 애들도 또래가 많았다. 비록 열채 남짓한 동네였지만 애들이 참 많았다. 그 시절엔 개도 많이 키웠다. 아마 좀도둑이 많아서였지 싶다. 골목에서는 애들 노는 소리, 개짖는 소리, 아랫동네에서 수탉 우는 소리, 어느 때는 엿장수 가위소리, 튀밥장수의 ‘펑!’ 소리에 놀라 LPG가스통이 터진 줄 알고 놀란 적도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시골장터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훈훈한 사람 사는 모습이거늘.

 

  애들이 커가고 형편이 풀리는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으로 교수댁이 이사를 왔다. 서로 인사를 나눌 사이도 없이 그 집 가장인 교수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한창 돈을 풀어야 할 나이에 가장이 가버렸으니 살림살이며 자식들을 어떻게 건사해야 할 것인가? 물론 가정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친정 가까운 곳으로 교수댁은 이사를 가버렸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다. 골목에서 딱지치기, 도토리구슬치기로 이런 것을 몽땅 따오는 것에 빠져, 아빠가 출근할 때 내준 숙제며 학교숙제를 멀리할 때가 있었다. 따온 딱지며 도토리를 화분대 밑에 숨겨놓고 재미재미 하는 꼴을 엄마가 못 보아주고 다 버렸다. 노는 습관을 미리 잡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참 짠하다. 엄마라는, 어른이라는 핑계를 앞세워 윽박지르고 무지막지했던 행동이 참 후회스럽다. 그때 좋은 말로 타일렀어도 엄마 말을 알아들을 아들이었는데,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다.

 

  그 뒤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어느 일요일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아들과 같이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들이 엄마를 심각한 어조로 불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약에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다면 엄마는 무슨 대책이 있어?”하며 어른도 생각지 못할 질문을 내게 던지는 것이었다. 듣는 순간아차하는 생각이 앞섰다. 어미인 내가 무슨 말로 아들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는지 기억은 없다. 개구쟁이로만 알았던 아들의 기막힌 말 한마디가 ‘충격의 화살’이 되어 뇌리에 박혀버렸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가끔 그 말이 떠오른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흘려버리는 것 같아도, 애들도 콩나물처럼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옆집 교수의 갑작스런 죽음을 보고서 엄마 못지않게 아들도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병약한 우리 아빠를 갑자기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엄마는 아무런 대책도 없고,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니 학교나 계속 다닐 수 있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 모앙이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으면 엄마한테 그런 당돌한 질문을 던졌을까? 그 무렵 우리 집 가장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매운 것은 먹지도 못해서 김치는 물에 흔들어서 먹었으며, 물을 마시면서도 짜다고 할 정도로 무염식을 했다. 얼렁뚱땅하는 성격도 아닌데다 신경성 위장병으로 젊어서부터 고생을 해온 터다. , 담배,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먹는 것보다 못 먹는 것이 너무 많아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그것이 기적이다. 지금까지도 친구들이 나를 만나면, 남부시장에 개고기랑 붕어 사러 가지  않느냐며 놀려대곤 한다. 본인도 건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토요일 일요일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난을 찾아서 어지간한 산은 다 헤맸을 것이다. 그러기를 3! 그 다음에 수석을 찾아서 3년 넘게 산과 강변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땀 흘리고, 좋은 공기 마시고, 일주일동안 학교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그러는 새에 차츰차츰 건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아들은 자기 앞날을 어떻게 설계하며 살았을까?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학업에 열중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시절까지 우수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추첨으로 배정 받던 날 아침이었다. 집을 나서면서 X고등학교에만 안 떨어지면 된다고 장담하고 나갔던 놈이 공교롭게도 그 학교로 배정된 것이다. 집에 가서 무어라 말할까 얼마나 고심했던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하는 첫말이 “엄마, 학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공부하기에 달렸어.”라며 엄마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던 아들이었다. 이 말이 나에겐 두 번째 충격의 화살이었다. 본인 감정은 누르고 엄마를 위로하던 아들! 내가 애들을 너무 잡도리하며 키웠나, 나를 돌아보았다.

 

  사실, 마음에 받는 심한 자극 곧 충격을 받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충격을 충격으로 받아들인다면 잘못될 수도 있다. 충격이 너무 커서 쓰러지는 일도 있고, 정신 줄을 놓아버리는 일도 있다. 아들아, 부싯돌을 생각해보자꾸나. 충격으로 터지는 부싯돌의 열과 빛을 보라, 개구리도 충격을 받아야 뛴다. 충격으로부터 우리는 새롭게 일어설 수가 있다.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코로나19’도 우리에게 강력하게 내던지는 충격이다. 충격은 어쩌면 앞날을 미리 예고해 주는 드라마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옆집 교수의 죽음이 아들을 성숙하게 만들었고, 아들의 기막힌 말 한마디가 엄마를 정신이 번쩍 들게 일깨워 주었다. 눈만 뜨면 여기저기서 터지는 충격적인 일들, 어찌 보면 삶은 충격의 연속이다. 아들아, 어려울 때마다 충격의 부싯돌을 생각하면서 살면 어떻겠이?

                                                                    (2020.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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