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행복한 때

2020.04.28 13:35

한일신 조회 수:4

지금이 행복한 때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한일신  

 

 

 

   미장원에 갔다.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가느라 차를 가지고 갔다. 이곳은 코로나19와 상관이 없는지 여전히 손님이 만원이었다. 잠시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어머니 머릿결은 모발이 굵고 짱짱한데다 숱이 많아서 자르기만 해도 예뻤다. 그런데 내 머릿결은 어머니와 달리 모발이 가늘고 숱이 적어서 아무리 공을 들여도 머리가 살아나질 않는다.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드리고 미장원에 다시 갔다. 내 앞에서 파마가 다 끝나 손질을 마친 어떤 손님은 나이가 꽤 들어 보였지만 뒤통수가 참 예뻤다. 나는 머리가 참 예쁘게 나왔다며 칭찬을 했다. 그랬더니 한 수 더 떠서 피부가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머리가 예쁘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단다. 허참! 칭찬해주고 본전도 못 찾은 것 같아 조금 섭섭했지만, 피부까지 좋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그만 부럽다는 소리가 연거푸 나왔다.

 

   그러자 그 예쁜 손님은 내가 차를 가지고 간 것을 알고는 나이 들어 운전하는 걸 보니 참 멋지게 사는 것 같다며 치켜세웠다. 그러자 원장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제야 나는 처진 어깨가 펴지면서 힘이 좀 생겼다. 나는 왜 내가 가진 것은 하나도 안 보이면서 남의 것만 다 좋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비우며 살자고 수없이 다짐했건만, 아직도 채우고 싶은 갈증에 허덕이고 있으니 얼마나 더 채워야 할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언제던가, 서울 강남의 타워플레이스 아파트 아주 큰 평수에 사는 분이 투신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자살 이유는 딱 한 가지, 답답해서라고 했다. 세상에 천하보다 귀하고 소중한 목숨을 답답해서 버리다니 참 어이가 없었다. 물질이 많다고 행복한 건 결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뭔가 정신적인 요인이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모 초등학교 3학년 ㅂ어린이는 부모들이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늘 집에 혼자 남아 점심 굶기가 일쑤란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아래에 사는 복지관 관장이 복지관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돈가스 가게에 데려갔더란다. ㅂ어린이는 다음 날 일기장에 처음 먹어본 돈가스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썼다는데 이 글을 읽은 내 마음도 이리 짠한데 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지 모르겠다.

 

   나는 요즘 전주 남부시장 새벽시장에 자주 간다. 운동기구에 몸을 풀며 이것저것 물건 사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잘만 사면 싸고 좋은 물건을 사고 싶은 만큼 사 올 수 있으니 말이다. 어제도 머위와 맵지 않은 꽈리고추· 표고버섯· 비트 등을 사가지고 오면서 소고기도 조금 사 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열고 만드는 법을 익힌 뒤 하나하나 만드느라 오후 2시에 식사를 했다. 치아가 없는 어머니와 함께 먹기 위해 잘게 부수고 갈면서도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요 며칠 일어나질 못해서 엉덩이를 밀어 달라시던 어머니도 소고기를 갈아서 끓여드렸더니 혼자서도 잘 일어나시니 세상에 이런 특효약이 어디 또 있을까? 하늘나라로 가실 때까지 이 상태만 유지되어도 좋을 텐데.

 

   행복이란 결코 멀리 있거나 숨어있는 게 아니라 항상 곁에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싱싱하고 좋은 야채를 사다가 만드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가족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지금이 최고로 행복한 때가 아닌가 싶다.

 

  더욱이 무서운 전파력을 가진 코로나19 때문에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와 이태리, 페루, 이라크, 레바논 등 지구촌 곳곳에서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열흘째 10명 선으로 안정세가 유지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곧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행복한 꿈과 희망을 안고 오늘도 나는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2020. 4. 27.)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67 마음의 빚 정남숙 2020.05.04 0
1466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더니 박제철 2020.05.04 1
1465 김상권 후배의 선종을 애도하며 김길남 2020.05.04 0
1464 마음의 거리와 사회적 거리 정석곤 2020.05.03 10
1463 코로나 퇴치의 여왕, 정은경 한성덕 2020.05.03 1
1462 밤을 잊은 그대에게 최상섭 2020.05.02 5
1461 나도 확찐자 정남숙 2020.05.02 0
1460 4월에 피는 풀꽃들 최상섭 2020.05.02 6
1459 마스크와 손편지 김길남 2020.05.02 2
1458 춘포다빛소리수목원 구연식 2020.05.02 2
1457 '평범'을 '특별'로 바꾸는 힘 두루미 2020.05.01 2
1456 까치가 물고 온 봄(2) 한성덕 2020.05.01 1
1455 봄 냉이와 주꾸미 맛 최인혜 2020.04.30 3
1454 10분 햇볕 쬐기 두루미 2020.04.30 3
1453 멀어져야 사는 세상 최인혜 2020.04.30 2
1452 할머니의 장갑 두룸비 2020.04.30 5
1451 잠재의식 한성덕 2020.04.29 5
1450 마스크 정남숙 2020.04.28 8
» 지금이 행복한 때 한일신 2020.04.28 4
1448 가고픈 농촌 최기춘 2020.04.2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