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2 13:28
4월에 피는 풀꽃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삶의 희열을 찾아 나서는 일이 봄바람처럼 살갑게 불어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욱이 나이가 들어서 소망을 담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뜻대로 쉽게 이룰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사업성의 일로 경제력이 동반되고 모험이 서려 항상 큰 파고를 걱정해야 하는 그런 큰일이 아닌 평소 소소한 씨앗들을 뿌리고 작은 지도를 그려보려는 일조차 쉽지가 않다. 한 알 두 알 심은 알곡이 뿌리를 내리고 뽀드득 언 땅을 뚫고 새싹을 올리는 봄날의 신기함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일조차 쉽지가 않으니 내가 나이를 조금 먹기는 먹었나 보다.
나는 평소 우리 풀꽃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심고, 가꾸고, 새로운 품종을 찾아 진력한 지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지났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권의 우리 풀꽃 서적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그 책들처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하지 못해 늘 아쉬워했었다. 재직시절에 우리풀꽃전시회를 6회, 현 직장에서도 작년에 가을꽃과 다육식물 전시회를 가졌음에도 사진을 찍어두거나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는 정도였다. 특별히 2006년 6월 18일과 19일에는 YTN 방송국에서 한나절을 촬영한 전시회 광경을 2분 16초로 압축해서 뉴스 중간 타임에 1일 8회씩 16회를 방송해 줄 때는 전국의 여러 학교에서 문의가 빛발쳤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Y 교수의 권유도 있었고 그 아름답고 깜찍한 우리 풀꽃들의 사진을 찍어 성장과정과 생육상태에다 문학성을 가미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솔직히 말하면 게으른 탓이 그 첫째이고 2년 터울로 시집과 수필집을 낸 내가 책값을 염려한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절실하게 꼭 필요한 소중한 가치라는 판단이 적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던 중 책장을 정리하다 한국문인협회에서 발행한 월간문학의 재작년 호에서 우연히 박정자 시인이 집필한 『꽃탑』이라는 시집 광고면에 눈이 번쩍 뜨이면서 “이것인데!”하고 깜짝 놀랐다. 바로 전화를 해서 어렵게 그 책을 구입했고 저자와도 교감을 가지는 처지가 되었다. 꽃탑 시집의 내용은 우리 풀꽃을 촬영하여 칼라로 인쇄하고 작은 글씨로 풀꽃의 특징과 생육상태를 사진 밑에 표기했으며 오른쪽 면에는 박 시인의 그 꽃에 대한 시가 실려 있었다. 은연중 내가 제작하고 싶었던 그 책을 발견한 것이다. 평상시 예쁘고 기이한 우리 풀꽃을 보면 핸드폰으로 촬영을 했었는데 오늘은 큰맘 먹고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한 한쪽 다리의 기능도 시험해 볼 겸 높지 않은 산에 오르기로 작정했다. 절친한 친구에게 함께 등산하자고 전화할까 생각하다가 아직은 내가 내 능력을 알 수 없어 혼자 등산을 하게 되었다.
나는 12년 전 정년퇴임을 하면서 사진작가가 되려는 마음과 우리 풀꽃의 생생한 사진을 찍어 보관하려는 결심을 하고 D300 니콘 카메라에 망원렌즈와 접사렌즈 등을 세트로 갖추었다. 처음 2년간은 열심히 진력했지만 현 직장에서 주야로 근무해야 되는 환경과 조금씩 나태해지는 피로가 쌓이면서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 *초지일관(初志一貫)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시방은 다시 시작하려는 각오만 무성할 뿐 아름다운 꿈을 크게 꾸고 부지런히 생활하자는 뜻의 *‘붕몽의생’(鵬夢蟻生)의 사자성어를 가슴 깊이 새긴다. 이 글을 쓰면서 새롭게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또는 정월 보름날 태우는 달집이 하늘로 오르려는 기상(액운을 떨치고 복을 불러들임)의 화력(火力)같이 그리고 천둥 속에서 번득이는 칼날의 굳은 의지를 세우지만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더욱 한심하다. 무엇하려고 이 나이를 먹었을까?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온몸을 휘감고 돈다.
정확하게 말하면 3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등산하는 큰 결심을 세우고 마침내 산에 오른다. 스틱과 물, 타올 등 기본으로 간략하게 준비한 배낭을 메고 몇 번 오른 적이 있고 춘란이 자생하는 그리 험하지 않은 산을 택했다. 등산하면서도 행여 산짐승이 나타날까 봐 목청이 떠나가게 ‘야호’를 외쳤다. 불안한 마음과 산에 오르는 기쁨을 함께 만끽하며 가시에 찔리고 넘어지기를 여러 번 하면서 천천히 오르다 보니 ‘아 뿔사’ 봄을 찬미하는 풀꽃 천지가 아닌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 근무하는 학교 주변에서 봄까치꽃, 광대나물, 긴병꽃풀, 벼룩나물, 금년에 처음으로 발견한 산자고, 돌나물 등의 풀꽃을 볼 수 있었는데 야생화 천국에 온 느낌이었다. 좁살뱅이, 자주괴불주머니, 솜다리, 골풀, 오이풀, 개발나물, 고수 등의 풀꽃을 발견하고 HP로 촬영하여 갤러리를 만들었다. 전에 계곡에서 보았던 옥잠란은 철이 일러서인지 볼 수가 없었고 그 많던 춘란도 드물게 볼 수 있어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리라는 생각이 들어 밝히지 않는 게 오히려 궁금증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앞선다.
“선생님, 더덕 큰 화분에 심어도 잘 사는데 한 번 키워보시겠어요?”
내가 우리 풀꽃을 선호함을 미리 알고 하는 말이다.
“하이고 K 사장, 고맙지. 한 뿌리만 캐어 봐."
K 사장은 줄기가 잘 올라온 두 무더기를 캐서 이끼와 함께 따로 조심스럽게 싸 주었다.
”야, 밥값을 톡톡하게 냈다. 참말로 고맙데이. 잘 심어 네 생각하며 키워 볼란다.“
하고 차 속에 안전하게 넣어두었다가 다음 날 공휴일인데도 새벽같이 출근해서 큰 화분에 정성스럽게 심고 부목을 대어 줄기가 오를 수 있게 해 주고 그늘에 가져다 두었다.
만물이 새롭게 소생하는 잔인한 달 4월의 마지막 날, 산에 올라 상당한 수확을 했기에 몹시 기분이 좋다. 더덕 줄기도 잘 가꾸어야겠다. 마음속의 바람은 날마다 봄바람이 불거나 봄꽃의 해후(邂逅)로 얻는 기쁨과 향기가 오늘 같기를 소원해 본다.
(2020. 4. 30.)
* 용두사미(龍頭蛇尾) : 용의 머리와 뱀의 꼬리라는 뜻으로 시작은 거창하고 끝마무리가 부실함을 뜻함.
* 초지일관(初志一貫) :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밀고 나감.
* 붕몽의생(鵬夢蟻生) : 개미가 봉황새의 꿈을 꾼다는 뜻으로 부지런하게 살면서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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