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2020.05.04 13:48

이진숙 조회 수:1

봄나물

신아문예대학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

 

이렇게 좋은 봄날엔 아침 일찍 밭에 나가서 이것저것 거두어들인다. 오늘도 창고에 가서 소쿠리와 가위를 챙기고 장갑을 끼고 밭으로 나갔다. 밤새 밤손님들이 다녀가진 않았는지 꼼꼼하게 둘러본다. 고라니의 개체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서 집집마다 밭작물을 간수하기 위해 밭 둘레에 망을 쳐 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 나온 싹을 밤새 모조리 뜯어먹기 일쑤다.

우리 집도 밭 전체를 빙 둘러가며 망을 쳐 놓았다.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것들도 맛있는 새싹을 용케도 잘 알아본다. 부추나 파처럼 향이 있고 매운 맛이 나는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망을 치지 않아도 되는 입구 쪽에 심어 놓았다. 채소들 중 겨울을 잘 견디고 싹을 틔우는 것들이 있다. 그 중 오래 전에 심어놓고 별로 눈길도 주지 않던 방풍나물을 올해 들어서야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알게 되었다. 그것도 TV를 보고나서야 알았다. 마치 민들레처럼 번식을 잘해서 그간 여러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어도 밭 여기저기에서 잘도 나온다. 이제 막 올라온 여리디 여린 연두색 새순을 따서 소쿠리 하나 가득 채웠고, 바로 곁에 있는 부추밭으로 갔다. 생명력이 강하기로는 방풍나물 못지않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부터 씨앗을 뿌린 것들이 10여 년이 훌쩍 넘어 우리에게는 너무 많아 고창에 사는 친구에게도 구이에 멋진 집을 지어 이시를 간 은 선생에게도 넉넉하게 나누어 주었다.

부추는 겨울을 나고 처음 나온 것이 몸에 좋다고 한다. 그동안에는 볼품없이 생겨서 잘라버렸는데 올해는 몸에 좋다는 말에 베어 버리지 않고 잘라다가 겉절이를 해 먹곤 한다. 부추는 다듬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다듬고 나서도 몇 번이고 물로 씻어야 하니 번거롭다.

이제는 망으로 둘러놓은 아스파라거스 밭으로 들어가 조심조심 다니며 제법 실하게 올라 온 것들을 잘랐다. 시기를 놓치면 잎이 펴서 먹을 수가 없으니 마음이 바쁘다. 매일 아침마다 들려서 잘라준다. 아스파라거스는 한겨울을 빼곤 내내 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먹을거리다. 이 세 가지 채소는 한 번만 심어놓으면 두고두고 몇 년이고 거둘 수 있으니 채소 중에 효자들이다. 특히 아스파라거스는 내가 어릴 때만해도 먹는 것인 줄 몰랐다. 단지 예쁜 새 신부의 손에 들린 부케를 장식하는 식물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제법 어른 티를 내며 갔던 레스토랑에서 멋진 접시에 담겨진 주 메뉴 곁에 한두 개 살짝 곁들여 놓은 아주 고급스런 음식 재료인 것을 알았다. 그런 고급스런 식재료를 집에서 키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터가 있는 곳에 살다보니 우연히 아스파라거스를 알게 되었고 한 번 심어서 키우고 싶었다. 봄에 시장에서 모종을 사고 싶어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해 우연히 모종을 보았는데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그만 돌아섰다. 그리고 씨앗 집에 다니며 구해보려다 여러 차례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우연히 완주군에 우리나라에서 세손가락 안에 들 만큼 큰 원예종묘사가 있어 그곳에서 드디어 귀한 씨앗을 살 수 있었다. 모판에 씨앗을 하나씩 심어 정성을 다해 키우니 하나도 빠짐없이 나왔다. 밭에 다 심고 남아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심은 지 2년 뒤부터 해마다 봄이면 뾰족히 올라오기 시작하여 늦가을까지 쉬지 않고 계속 올라온다. 이렇게 초보인 나도 잘 키우는 식물이 왜 그렇게 비싸게 팔리고 구하기가 어려울까? 알 수 없다. 방풍나물 모종도 마찬가지다. 모종값이 연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민들레보다 더 번식을 잘 하는데….


밭에 나가 부지런히 거둬들인 봄나물을 들고 안으로 들어와 반찬을 만들었다. 아스파라거스는 살짝 데쳐 파릇파릇한 것을 예쁜 접시에 담아 집에서 만든 감식초로 맛있는 초고추장을 곁들여 밥상에 내 놓았다. 부추는 내가 좋아하는 부추전을 부쳤다. 전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마지막 방풍나물은 여린 잎이니 멸치 액젖과 매실청 고춧가루 등 갖은 양념으로 살짝 버무려 맛깔나게 담아 놓았다.

아침 밥상을 본 남편의 입이 벙긋해지며 입맛을 다셨다.

춥고 긴 겨울을 지내고 맞이하는 봄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부자로 만든다. 하지만 올봄은 ‘코로나19’로 인해 암담한 계절로 보내지만 밀고 들어오는 봄내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답답한 일상 속에서도 파릇파릇 올라오는 쑥이 있는 곳에 어김없이 동네 처자들이 울긋불긋 예쁜 수를 놓고 있다.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매일 많은 사람들이 쑥을 캐는데도 계속 그 자리에 앉아서 쑥을 캐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쑥 내음과 함께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밝고 맑은 곳으로 하루 빨리 나와 향긋한 봄을 맞이하며 상쾌한 기분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우리 앞에 다가오기를 기대해 본다.

(2020. 4. 27.)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87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 큰 이유 최기춘 2020.05.09 7
1486 감사의 건강학 한성덕 2020.05.09 4
1485 동학농민혁명을 돌아보며 곽창선 2020.05.09 3
1484 코로나19 이후의 한반도 임헌영 2020.05.08 5
1483 나는 하루 중 98%는 긍정적이다 나인구 2020.05.08 3
1482 지금은 비빔밥 시대 김학 2020.05.07 4
1481 어버이의 날 두루미 2020.05.07 4
1480 막말과 선거 이우철 2020.05.07 3
1479 존경받는 남편이 되기 위한 10가지 두루미 2020.05.06 7
1478 인생에도 색깔이 있습니다 두루미 2020.05.06 5
1477 정읍의 매력 백남인 2020.05.06 12
1476 새로운 일상 하광호 2020.05.06 0
1475 한지의 보답 정남숙 2020.05.06 3
1474 노년의 멋 두루미 2020.05.06 5
1473 여배우의 주름살 두루미 2020.05.05 3
1472 선괭이밥 백승훈 2020.05.05 3
1471 하품아, 고맙다 한성덕 2020.05.05 4
1470 지금이 중요하다 고도원 2020.05.05 1
1469 양평에서 들려온 교향악 전용창 2020.05.04 4
» 봄나물 이진숙 2020.05.0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