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서 들려온 교향악

2020.05.04 14:30

전용창 조회 수:4

양평에서 들려온 교향악

꽃밭정이수필문학회*신아문예대학 수필 목요야간반 전 용 창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 청라언덕위에 백합 필적에 /(중략)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 백합 같은 내 동무야 /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봄이 오면 누구나 한 번쯤 <동무생각>을 부른다. 그만큼 이 노래는 어릴적 고향의 옛 친구를 생각나게 한다. 그때는 키가 비슷하여 어깨에 서로 팔을 얹고 다니기도 하니 어깨동무 친구들이다. 이 노래는 작곡가 ‘박태준’이 대구 계성학교를 다닐 때 인근 신명학교에 다니는 한 소녀를 좋아했는데 내성적인 그는 끝내 “좋아한다”는 한마디 말을 못하고 헤어지고 만다. 그러나 그 시절의 추억을 성인이 될 때까지 가슴속 깊이 간직했다고 한다. 훗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은상 시인’이 가사를 써주었는데 그가 옛 추억을 더듬어 곡을 부쳐 완성된 가곡이 <동무생각>이라고 하니 얼마나 로맨틱한 노래인가? 푸른 담쟁이덩굴로 가득한 언덕은 ‘박태준’의 고향 언덕인데 그곳에 하얀 백합꽃 한 송이를 피우면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던 소년의 추억이 깃든 교향악이 양평 산골에서 나에게 들려왔다.

 

  올봄 4월에 월간 ‘한국산문’에서 수필가로 등단을 했는데 이 문예지로 등단한 선배 문우님께서 전자편지를 보내주셨다. 그분은 경기도 양평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양평이라는 두 글자를 보자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올랐다. ‘소년은 징검다리에 앉아 물장난을 하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세수를 하다 말고 물속에서 조약돌 하나를 집어 "이 바보!" 하며 소년에게 돌팔매질을 한 뒤, 가을 햇빛 아래 갈밭 속으로 사라진다. 그날부터 소년은 소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에 사로잡힌다.(중략) 가을꽃을 꺾으며 송아지를 타고 놀다가 소나기를 만난다. 둘은 수숫단 속에 들어가 비를 피한다. 비가 그친 뒤 돌아오는 길에 물이 불은 도랑을 소년은 소녀를 업고 건넌다. 그 뒤 소년은 소녀를 오랫동안 보지 못한다. 소년은 자리에 누워 소녀에게 전해 주지 못한 호두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마을에 갔다 돌아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소녀가 죽었다는 말을 하게 된다. 소녀가 죽을 때 "자기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와 함께….

 

 

 

 

  <소나기>의 소년은 가을에 소나기를 맞아 많이 앓았던 윤 초시네 증손녀가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첫사랑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지 싶고, <동무생각>의 소년은 지금도 어딘가에 살고 있을 소녀를 성년이 될 떄까지 그리워하며 살아왔다. 어릴 적 첫사랑이 유년기에서 성년에 이르는 성숙의 단계라고 하지만 그래도 잊고 싶지 않은 것은 그때는 그게 소년 시절의 삶 전부였기 때문이 아닐까?

 양평의 선배님은 언제부터인지 내 글의 독자였다고 했다. 7~8년 전에 잠시 전주에서 살았는데 그때 지금 나의 스승인 ‘K 지도교수님’께 수필을 배웠다고 했다. 나의 글에서 아들과 동생들, 또한 주변 지인들과 살아가는 모습이 신실하고 선량해서 나의 글을 따뜻하게 읽어 왔다며 칭찬해 주셨고, 앞으로 좋은 글을 기대한다는 격려도 있었다. 그리고는 겸손하게 ‘졸작을 묶어 낸 것이 있는데 한 권 보내드릴까요?’ 라며 추신으로 맺었다. 세상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침울하고 웃음을 잊고 있을 때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양촌 산골에서 날아온 편지는 ‘봄의 교향악’이 되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도 답신을 보냈다. ‘양평은 참 좋은 곳이지요. 어린 시절 첫사랑을 연상케 했던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가 떠오르기에 더 좋아요. 얼마 전에 그곳으로 문학기행을 갔는데 너무도 좋았어요. ‘두물머리’에서는 ’가마구찌‘도 보았어요. 서로의 모습은 몰라도 글로써 마음이 오고 가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주님께서 선한 믿음의 교통을 이루게 하심이라 생각합니다. <반 평짜리 사랑방> 이란 수필집을 받았다. 나는 반가움에 얼른 읽어보았다.

 1995811일 마흔여덟 살. 8월 밤 열시. 남편과 같이 근무하는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장님이 조금 다쳐서 병원에 있으니 삼성의료원으로 오라 한다. 아들과 함께 급히 택시를 탔다. 응급실의 남편은 팔다리가 제자리에 있었고 “당신 왔어?” 하는 걸 봐서 정신도 있었다.(중략) ‘운전을 위해 술을 마시지 않았던 동료는 지금 중환자실에서 죽을지 살지 모르는 사경을 헤매고 있고, 뒷자리에 탔던 다른 동료 하나는 현장에서 사망하여 영안실에 있는데 조수석에 앉았다 당한 남편의 부상을 두고 요란을 떨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의 병간호를 하면서도 일기형식으로 쓴 <손익계산> 제목의 수필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어쩌면 그런 와중에도 차분하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사고는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계획의 목적은 사랑이었다. 남편은 누구의 권유 없이 예배당에 나가게 되었다. 잠시 사고로 빨간색 마이너스가 적히는 것 같았으나 우리를 지원해 준 사람들의 사랑을 포함하여 무한대의 이익을 남긴 흑자의 시간이었다.’ ‘20년 후’ 놓고 나간 자동차 키를 가지러 집 안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이 남편에게 종종 있다. 정신 차리고 살라고 했더니 “그러게. 내가 왜 그러지? 마누라를 버려야겠다고 날마다 생각하면서도 자꾸 잊어버리고 오늘도 데리고 사네.” 한다. 남편의 건망증 덕에 우리는 아직도 같이 살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선배님의 남편을 ’갈보리에서 시온성‘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선배님 부부의 삶이 청라언덕의 백합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고 선배님의 글은 양평 수입리 산골에서 봄의 교향악이 되어 세상 끝까지 멀리멀리 울려 퍼지기를 빌었다.

                                                        (2020.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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