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의 보답

2020.05.06 13:35

정남숙 조회 수:3

한지의 보답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내가 고향으로 돌아오기 한참 전 일이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동생에게 친구가 찾아왔다.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하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아, 누나를 뵌 지가 60년은 훨씬 지났으니 못 알아보시겠네요. 저 열이예요.

 했다. 이름을 들으니 생각이 났다. 그러나 얼굴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이름을 말해줬으니 알 수 있지 길에서 만났으면 모르는 사람이라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것 같았다. 해방둥이 내 동생과 같은 해 태어난 동네 꾀복쟁이 친구들은 종잡아 십여 명이 넘는다. 그 중의 3~4명은 초등학교를 거쳐 상급학교에 진학 후 나름대로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났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거나 졸업도 못한 채 일찌감치 기술(技術)이라도 배우겠다고 각각 뿔뿔이 고향을 떠나 객지를 헤매고 다녔다.

 

 부모가 살았을 때엔 그래도 명절에 한 번씩 다녀가 얼굴이라도 봤었는데 부모들이 다 돌아가시고 없으니 완전 고향을 잊고 살았던 친구들도 많다. 이 친구도 그 중 하나였다. 50여 년을 객지에서 고생고생 떠돌다가 늘그막에 병들고 갈 곳이 없어 고향을 찾아 온 것이다. 이 친구의 형편을 들은 동생은 두말없이 짐을 싸서 내려오라며 제 땅에 조립식 주택을 지어 살게 했다. 부양할 가족도 없고 모아 논 돈도 없으니 거렁뱅이나 진배없는 이 친구를 알뜰히 보살펴 지자체의 생활비와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돌보아 주고 있었다. 동생덕분에 생전 처음 사람대접 받으며 맘 편하게 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 친구의 얼굴에서 웃음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 나이가 70대 중반에 이르니 젊어서 고생한 후유증과 지병이 도지고 치매까지 찾아오고 말았다. 그의 모든 사후의 일도 동생 몫이었다. 지난해 겨울 보호자(保護者) 자격으로 요양원에 입소시켜놓고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하루 건너 찾아가 말벗이 되어주고 있었다. 바쁜 일이 있어 하루라도 못가면 사무실로 찾아와 동생에게 전화 걸어 달라 부탁한다고 했다.

 

 요양원에서는 다른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오로지 동생 전화번호만 외우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이 친구를 맡겨놓고 온 동생을 곧바로 전자상가에 들려 커다란 화면의 TV를 사다가 그의 방에 설치해줬다. 거실에 나가 다른 사람과 채널 싸움하지 말고 혼자 맘 놓고 편히 TV를 보고 지내라는 배려였다. 하도 알뜰살뜰 챙기는 동생에게 나는 너무 지나친 것 같아 그 친구에게 갚아야 할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다. 턱도 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물어본 말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말을 한다. 그 친구 아버지는 우리 한지공장(韓紙工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고향은 전주(全州)한지의 원산지(原産地). 동네마다 한지공장 하나쯤은 거의 다 있었다. 우리 동네엔 80여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절반 이상이 우리 한지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한국동란(韓國動亂)이 발발하자 아버지는 우리 한지공장에서 완성된 한지장판을 그대로 공장에 쌓아두면 인민군들에게 빼앗길 것 같아 감추어 둘 곳을 찾았다. 공장직원들에게 부탁하여 각자의 집에 숨길 수 있을 만큼 나눠주셨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한지공장을 시작했는데 그간 보관시킨 한지는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로지 한 사람 그 친구 아버지는 “형님이 맡겨놓으신 물건”이라며 가지고 왔다고 한다. 당시 전쟁 중이라 너나없이 생활이 어려워 자기의 것이 아니지만 그거라도 팔아서 목에 풀칠이라도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싹 씻고 미안함조차 없었지만 우리 아버지는 묻지도 않았다. 그의 형편도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리 없었건만 그대로 보관했다 가져온 것이다. 그 후로 우리아버지는 심성 좋은 그의 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 이런 내용을 어린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자녀들이 편견(偏見)을 가질까봐 아버지는 말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네에 같이 살고 계시던 작은 할아버지가 동생에게 그 얘기를 해 준 것이다. 맘속에 저장하고 있던 동생은 그의 부모에게 후히 대했듯 그 친구에게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할 수 있는 자기 몫이라고 했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에게 이로우면 따르고 불리하면 침 뱉고 돌아서는 세상인심을 말한 것이다. 다른 친구의 아버지 이야기다. 우리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우물도 울타리 사이에 있어 한 우물은 먹고 살던 친구네다. 그 친구 아버지도 우리 한지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느 날, 옆집 친구와 대문 앞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저 만치 어떤 사람이 우리 집 골목으로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었다. 행색은 남루하기 그지없고 다 헤진 옷에 다 떨어진 군화를 신고 바랑하나 짊어지고 쩔뚝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보기에도 무서워 얼른 엄마를 부르고 집으로 도망쳤다. 그 사람은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엄마는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저녁에 퇴근하신 아버지는 곧바로 그를 목욕탕에 데리고 가 깨끗이 씻기고 적십자 병원에 입원을 시켜 새사람으로 소생케 했다. 그가 바로 우리와 한 샘물을 마신 그 사람이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본군으로 끌려가 남양군도에서 포로(捕虜)로 있던 중, 전쟁이 끝나고도 곧바로 귀국(歸國)하지 못하고 몇 년을 오지 않아, 그의 집에서는 전사(戰死)한 것으로 알고 제사(祭祀)를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아버지는 몇 년 동안 그의 거처를 수소문해 살아있음을 확인하여 우리 집으로 올 수 있게 한 것이다. 다시 우리 한지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몇 년 후, 우리아버지의 사정상 사업을 접게 되었고 서울에 올라가 재기의 꿈을 준비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은 틈을 이용, 이 사람은 우리 공장 대신 시내사람이 만든 한지공장 공장장의 신분이 되자 안면을 싹 바꾸었다. 이어 동네 이장이 된 그는 비료배급이나 나락 공출(供出)에 차별을 두며 우리에게 대 놓고 갑질을 했다. 그와 우리 집 사이의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돌담을 빙 둘러 쳐 놓은 우리 담 물구멍을 막아 담을 무너뜨리게 했다. 높은 우리 집 마당의 빗물이 낮은 자기 집으로 흐르는 것이 당연함에도 안면(顔面)몰수하고 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떼를 쓰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눈에 가시처럼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뻔뻔함은 일상이 되고 있었다.

 

  친정에 갈 때마다 옥상에 올라서면 허물어진 그의 집터가 흉물스럽게 몇 십 년째 방치되어있다. 초가삼간 좁은 집터에 새 집을 지을 형편도 되지 않았다. 내 동생과 동갑내기인 그의 큰아들이, 반신불수에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제 아내를 데리고 바람도 쏘일 겸 가끔 푸성귀를 간다며 다녀가곤 한다. 이 친구는 교직(敎職)에 잠시 있었으나 곧 종교에 귀의하여 목회를 했는데 성공하지 못하여 고통스런  노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모를 일이다. 안됐다 하면서도 괜히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맘이 드는 것은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법()보다 양심(良心)으로 우리의 뒷날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의 자식인 친구의 노후와 한지(韓紙)의 보답(報答)으로 편안한 노년을 앞에 둔 동생의 두 친구를 비교하는 나도 한심한 속물임을 어찌하랴.  

                                                   (2020. 5. 6.)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87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 큰 이유 최기춘 2020.05.09 7
1486 감사의 건강학 한성덕 2020.05.09 4
1485 동학농민혁명을 돌아보며 곽창선 2020.05.09 3
1484 코로나19 이후의 한반도 임헌영 2020.05.08 5
1483 나는 하루 중 98%는 긍정적이다 나인구 2020.05.08 3
1482 지금은 비빔밥 시대 김학 2020.05.07 4
1481 어버이의 날 두루미 2020.05.07 4
1480 막말과 선거 이우철 2020.05.07 3
1479 존경받는 남편이 되기 위한 10가지 두루미 2020.05.06 7
1478 인생에도 색깔이 있습니다 두루미 2020.05.06 5
1477 정읍의 매력 백남인 2020.05.06 12
1476 새로운 일상 하광호 2020.05.06 0
» 한지의 보답 정남숙 2020.05.06 3
1474 노년의 멋 두루미 2020.05.06 5
1473 여배우의 주름살 두루미 2020.05.05 3
1472 선괭이밥 백승훈 2020.05.05 3
1471 하품아, 고맙다 한성덕 2020.05.05 4
1470 지금이 중요하다 고도원 2020.05.05 1
1469 양평에서 들려온 교향악 전용창 2020.05.04 4
1468 봄나물 이진숙 2020.05.0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