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이라도더 읽히고 싶어서

2020.05.14 13:27

김성은 조회 수:6

책 한 권이라도 더 읽히고 싶어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세 번째 수업이었다. 우리 집 거실에 상 두 개를 펴놓고 초등 3학년 언니 둘과 2학년 동생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던가? 녀석들은 쉴새없이 떠들었고 열심히 썼다. 저희들끼리 배꼽을 잡고 웃는가 하면 서로의 맞춤법을 지적하면서 집중했다.

 시냇물 같이 경쾌한 유주의 눈과 손이 책을 향했으면 했다. 도처에 흥미로운 영상 매체가 즐비한 환경 속에서 유주의 주의를 끌 자극제가 필요했다. 차분한 시선으로 책에 열중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조심스럽게 단행했다. 마침 이웃에 살고 있는 유주 친구 자매와 모임이 성사되었고, 나는 1주일에 한 번 아이들과 독서수업을 시작했다. 10년 전쯤 따놓은 3급 독서지도자 강의록을 찾아 밑줄치기, 제목 바꾸기, 주인공에게 편지쓰기 등 학습 모형을 공부했고, 초등 독서지도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검색했다.

 동시 세 편을 출력해서 세 녀석에게 나누어 주고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학습 활동에 돌입했다. 앞을 볼 수 없어도 아이들 말하기나 읽기 영역 지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저녁 730분부터 930분까지 나는 2교시 수업을 계획했다맹학생이 아닌 비장애 학생을 그것도 초등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나는 제법 긴장했다. 아이들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자세부터 바로 잡았다놀고 싶어 안달하는 세 녀석들의 엉덩이를 붙들어 놓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지만 순수한 천사들은 ‘무서운 꿈을 꾸었다.’로 시작된 문장 이어달리기 속에 빨려들며 수업의 흐름을 탔다.

 사각사각 연필로 글씨 쓰는 소리가 기분 좋은 빗소리처럼 들렸다. 아이들은 무서운 꿈을 꾸어서 엄마를 불렀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공부나 하라고 타박을 주는 장면을 이야기로 엮어가며 깔깔거렸다. 뜬금없이 오빠가 등장하기도 하고, 아빠한테 말대꾸를 해서 혼이 나기도 하는 다소 엉뚱한 전개였지만 아이들 스스로 창작하고 쓰고 말하고 읽어보는 과정으로 이미 내 목표는 달성이었다. 백도화지에 펼쳐지는 아이들의 상상력이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이요, 성장의 잠재력일테니까. 1교시가 끝나고 아이들은 냉장고로 달려갔다. 입맛에 맞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골라 식탁에 둘러 앉은 세 공주는 달게 먹고 말했다. 20분 간의 휴식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유주는 이상하게 공부 시간은 엄청 긴데 자유 시간은 진짜 빠르다며 주체할 수 없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은희경 작가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열 살 먹은 유주나 마흔이 넘은 나나 뽀로로처럼 노는 시간이 제일 좋은 건 매한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책을 놀이처럼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까? 고맙게도 세 녀석은 ‘토네이도가 무서워’라는 초등 지리책을 제법 열중해서 읽었다. 도로시의 모험을 이야기하며 미국과 뉴욕, 영국과 프랑스까지 재잘재잘 할 말도 많았다. 930분에 친구들을 보내고 바쁘게 유주를 씻겼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화창했다.

 

 

 

 ‘지랄 발랄 하은맘의 18년 책육아’의 저자 김선미가 하은에게 쏟은 열정과 노고에 비하면 내 서툰 독서수업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함께 책을 읽고 느끼고 웃고 쓸 수 있어 기뻤다.

                                                                       (2020.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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