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끝자락

2020.05.30 14:04

최상섭 조회 수:9

5월의 끝자락

 

 

시인·수필가 최 상 섭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갈 수 있는가? 푸른 신록을 데리고 와서 순진한 가슴에 초록의 물을 들이고 산으로 들로 유혹하더니 이제는 시치미를 떼고 소리 없이 떠나가려 하는가? 그 많은 풀꽃이며 새소리 물소리 청아하게 울려 퍼지게 해서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게 하고서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려 하는가? 나는 네 화려한 옷차림과 새로움에 반해서 매일 산으로 들로 나가 그 옷차림 속의 풀꽃을 보고 는개비 맞으며 초록으로 단장한 환상적인 네 모습에 뿅 넋을 놓았다네. 그 뒤 연정을 품으며 살짝 네 곁으로 다가가려 함을 네가 더 잘 알면서 이제는 이별의 인사도 없이 떠나가면 그만인 양 내 가슴속에 불을 지를 판인가? 무엇 하려고 뻐꾸기는 데리고 와서 한나절을 대문간에서 울게 하여 내 마음마저 서럽게 하더니 이제는 노랑 꾀꼬리 노랫소리로 5월의 하늘과 바람을 찬양하는가? 이것이 다 네 사랑을 앞세운 계책임을 우리는 진정 모르고 속기만 했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너를 믿으며 천지간에 너와 나의 만남이 소중하다고 여겨 온몸으로 반기려 한 게 정녕 어리석었단 말인가? 새삼 생각해 보면 이렇게 온갖 사랑이라는 우리의 애정이 다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인연이라는 하늘의 뜻이 함께해야 이룰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겸손하게 기도를 했다네. 그런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리움만 남겨두고 먼 길 떠나려 하는 네 처사가 너무 야속하지 않은가?

 

 

 흘러가는 세월의 발목을 누가 묶어 둘 수 있겠는가? 그 세월에 편승해서 줄행랑치듯 떠나가려는 네 심사가 참으로 야속하다. 이렇게 이별이라는 쓰라림을 겪기에는 너무 가슴이 에인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가? 네가 떠나가면 나는 또 몇 날 며칠을 그리움에 밤잠을 못 자고 긴긴밤을 고통으로 지새워야 하는지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문풍지를 울리는 바람에도 행여 당신인가 싶어 창문을 열고 보면 까만 밤이 지나가는 흔적인 것을 왜 나는 그리움 속에서 당신을 원망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사람이 산다는 것이 이별의 연속이고 이를 불가에서는 회자정리라 했던가? 사람이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이별은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하늘만함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저 서러운 마음뿐이라네. 그것이 우리의 인연이라면 이제는 조용히 눈을 감을 수밖에…,

 

 

 이제 떠나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득한 마음뿐이네. 그러나 간절히 바라는 것은 시방 떠나가는 것처럼 쉬이 돌아올 것을 믿으며 나는 기다리겠네. 당신의 푸른 산과 들, 하늘을 바라보며 그날이 오리라는 기다림으로 오늘은 처량한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네. 잘 다녀오시게.

 

                                                                                      (2020.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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