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한 이별

2020.05.30 15:01

소종숙 조회 수:6

홀가분한 이별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소종숙

 

 

 

 

 

  노년이 되면 큰집에서 작은집으로 집을 축소해야 한다. 마음의 욕심도 버리고 물건도 정리해서 간결하게 살아야한다.  박경리 작가는 영원한 이사를 하면서, 버리고 갈 것만 있어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노인이라면 누구나 공감되는 언어다.

 

 

 

  오늘따라 새벽부터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스럽다. 어디서 좋은 소식이라도 오려나?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작은아들의 침통한 목소리였다.

 

 "어머니, 어젯밤 장모님이 별세하셨어요."  

 

 갑작스런 소식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며 그래 알았다 하고 수화기를 놓았다. 주일이라 교회에 가려던 참이었다. 큰아들에게도 연락을 했다.  며느리가 받는데 목이 메인소리로 예배를 드리고 출발하면 오후 3시쯤 도착하겠다고 했다. 전북대장례식장으로 같이 가기로 약속을 했다.

 

 

 

 억겁의 세월을 넘어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부부의 인연이 되고, 스쳐가는 짧은 인연이라도 최소한 1천 겁 이상을 뛰어넘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그분과 나는 사돈이란 인연을 맺었으니 보통 인연은 아니리라. 서로 오근자근 말은 없었어도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그분의 영정 앞에 머리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바깥사돈께서는 잘 보살피지 못한 죄인이라며 눈물을 적셨다. 온가족의 슬픈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며느리의 등을 쓰다듬어주면서 내 눈에도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귀한 딸 고히 길러 우리 집에 보내주신 고마우신 분!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아마도 그 분이 막내딸을 부탁하시는 듯싶었다.

 

 

 

  이별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별은 그리움 때문에 슬프다. 병원에 며칠 계실동안 찾아가 보지 못하여 미안하고 못내 아쉬웠다. 그분은 잔정은 없으셔도 속정은 깊으시고. 대범하셨다. 평생 문구사업을 하시며 많은 사람을 거느렸으니 짐도 만만치는 않았으리라 싶다. 23녀를 낳아 딸 셋을 교수로 교사로, 아들은 의사로 뒷바라지만 하시다 78세로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셨다.

 

 

 

  참 강인한 분이셨다. 제주도분이 고학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아빠와 인년으로 결혼하여 평생 전주에서 사셨다고 한다. 마치 성녀처럼 사셨다. 미인인데 검소하여 세상 유행과는 거리가 먼 듯 항상 그 머리. 그 옷차림이었다. 얼음냉수처럼 차가운 듯싶어도 속은 한없이 온화하셨다. 딸에게 심장 약한 시어머니에게 잘해드리라고 전화로 당부하시던 말씀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죽음은 문이야. 죽는다는 건 끝이 아니야. 죽음을 통과해서 다음 세상으로 나가는 거지.  일본영화 <굳바이> 오케스트라 첼로연주자인 주인공이 악단이 실패한 뒤, 영원한 여행, 도우미로 취직하여 체험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난 문지기로서 많은 사람을 배웅했지.

 

  사돈께서도 죽음의 문을 통과해서 다음 세상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전동성당에서 영세도 받으셨다니 하나님 품안에서 영원히 안식하시리라. 다시 사망과 눈물이 없고, 아픔이 없고, 애통이 없는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는 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계시리라.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서운함과 그리움에 대한 슬픔이겠지요.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셨어도 상면하지 못하고 결국 사위인 우리 아들이 마지막 임종을 했다고 한다.  

 

  그 분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듯 비가 내리더니, 문상 오시는 분들을 위해 비가 멈춘다. 나는 마지막 떠나는 뒷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안녕히 잘 가시라고 배웅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분이 세상에서 일평생 같이했던 가족들의 정. 세상의 짐을 모두 다 내려놓고, 웨딩드레스대신 수의를 입으시고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참 홀가분하다 하시며 훨훨 떠나셨으리.

   

                                                                            (2020.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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