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 다녀오던 버스에선 무슨 일이
2020.06.20 14:50
20181226 스키장 다녀오던 버스에선 무슨 일이
노기제(통관사)
불경기 찬바람이 역력한 관광회사의 스키여행. 모두 열 한 가족, 서른 명을 모시고 크리스마스 연휴에 집을 떠난 가이드는 20년 베테랑 전 스노우보드 강사 JM 님 이다. 경기 좋던 시절 매해 스키시즌이면 가이드가 열이라도 부족했던 고객님의 숫자는 천 오백을 웃돌았다. 화려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몸을 떤다. 한 시즌 벌어 일 년을 먹고 살았던 그리운 옛날이여!
그 때 그 고객중의 하나였던 필자도, 변해버린 지금의 상황이 낯설다. 일인당 고작 40불 정도면 하루 종일 눈밭에서 가족이 함께 행복을 빚어내던 초창기 때에 비해, 4배 이상으로 몸값을 올린 리프트 티켓이 가장 큰 원흉이겠다. 4인 가족의 하루 리프트 티켓 값에 아이들 스키스쿨 비용에 3박 4일 먹고 자고 하려면 몇 천 불 훌쩍 날아간다.
50 인승 대형 버스에 편하게 자리한 서른 명 중엔 할머니, 부모, 아이들 3대가 섞여 있다. 차분한 목소리에 간간히 질문을 던지면서 가이드 자신의 가정을 풀어낸다.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 놓는다는 느낌을 주면서 청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거부감 없이 시작되는 첫 딸아이의 성장통이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흥미를 돋게 한다. 언젠가부터 아빠와 눈도 안 맞추며 서먹해지는 행동. “안녕하세요?” 손님 취급이다. 틴에이저 입성 2년 전이다.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야 표현 할 방법이 없지만,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아빠의 위치. 둘째 딸과 한 살 반짜리 아들에게 고개를 돌려 위로를 받는다.
십여 년 홀로 외국생활 했던 내 멋대로의 습관으로 부부가 한 방을 쓰는 불편함을 고백한다. 신혼 일 년 후에 합의하에 각방을 쓴다. 듣는 이들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오랜 결혼생활로 마음 벌어진 부부들의 각방쓰기 비밀을 합리화 시켜주는 꿀멘트다.
아내의 서툰 요리 솜씨에 칭찬 일색으로 용기를 주고 더 열심히 요리에 정진하게 만든다. 현명한 남편이다. 찡그리고, 탓하고, 안 먹고 해서 얻어지는 결과가 무엇인지 진즉에 알아챈 거다. 아내가 맘에 안 들고, 기대에 못 미치고, 급기야 화가 치밀어 욕지거리에 손찌검까지 가는 남편들이 허다한 세상이다.
사내자식이 얼마나 못났으면 아내에게 욕을 하느냐는 부모님의 교훈을 기억한 덕분으로 화를 참고 견딜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실상 화가 난다는 기준이 뭘까. 빼앗기지 않고, 이기고,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는 욕심, 내지는 이기심이라 표현한다.
“전쟁터에요. 가정도 역시 내가 주도권을 잡고 내 마음대로 휘둘러야 속이 편해지는 곳이에요. 사랑하고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잊고 살기 십상에요.”
결혼 11년 차 가장이 풀어내는 강의가 명품이다. 물론 자신의 경험인양 가족들을 도마위에 올렸지만 20년 세월에 가이드의 눈에 비친 수많은 가정들의 단상을 뽑아 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인생 별것 아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어둠속에 가두고 숨으려 했다면 툭툭 털고 밝은 해 아래로 나올 것을 종용하는 따뜻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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