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시선

2020.08.11 16:50

한성덕 조회 수:3

따가운 시선

                                                  한성덕

 

 

  가슴아린 날이었다. 그날만큼은 하루가 천년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왠지 따갑고 싸늘하고 썰렁했다. 그런 분위기여서 멍때림이 강했었나? 동공은 힘을 잃고, 초점은 분산되었으며, 가슴은 두려움(?)으로 콩닥거렸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처하기만 했다. 나의 느낌인지, 아니면 실제적인 그곳의 분위기였는지 첫 미팅에서 가졌던 소감이다.

  은퇴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나이로든지 법이 정한 기한이든지 시차만 다를 뿐이다. 은퇴 없이 살 것을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은퇴하면, 지나온 시간 속에서 남아있는 시간을 생각하며 ‘성공적인 인생’이란 무엇인지 정의해 볼 수 있다. 나는, 그 남아있는 시간들을 ‘삶의 전쟁’이라 표현하고 싶은데 본질에서 너무 멀고 거창한가?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해 보는 소리다.

  실제의 삶에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물질적인 것을 손에 넣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테면 훌륭한 교육, 안정된 가정, 신체적 정신적 건강, 그리고 좋은 취미 등을 말이다. 그러면 성공이고 행복한 건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의 소중함이 절실했다. 일이 없는 은퇴처럼 무료하고 허전하며, ~해지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어서다. 그래서 일을 찾아 나섰다.

  단짝친구 중에 목사요, 대학교수가 있었다. 사회학자로서 복지에 관한 강의를 전담했는데, 막 태동한 요양보호사 강의까지 맡았었다. 앞으로 반드시 필요하다며, 사회복지학과에 나를 강제(?)로 등록시키고 요양보호사까지 하라던 친구였다. 그야말로 억지 춘향이었다. 사회복지사는 2년 과정이지만, 요양보호사는 초기여서 어렵지 않게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때가 20088월이었다. 그 뒤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으니 소위 ‘장롱자격증’이었다. 그 단짝친구가 교수직을 사임하고 요양원을 인수했다. 그리고 2018년이 되었다. 핸드폰 문자로 ‘우리부부를 가르쳤으면 좀 써 먹으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소식이 날아들었다. 둘이 한 팀인데, 짝으로 일하던 부부가 갑자기 그만 두었으니 우리가 와서 그 일을 맡으라며 빨리 오라고 했다. 농담이라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또 한 번 억지로 끌려갔다. 한 달만 한다는 게 넉 달을 하고야 말았다.  

 참 기막힌 일이 생겼다. 나는 65세에 목회에서 조기은퇴 했을 뿐인데, 그 친구는 65세에 세상에서 은퇴했다. 심장 수술을 한지 두 달 만에 천국으로 갔으니 이런 황망한 일이 있나? 한쪽 날개를 잃은 슬픔이 밀려들어, 3개월여 동안 일을 할 수가 없어 우울증환자처럼 어리벙벙하게 지냈다. 아버지를 잃고, 31살 된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정말로 소중한 친구였음이 실감났다. ‘나도 이러한데 사모는?’ 누구보다도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2017년 은퇴이후, 아내의 찬양사역으로 살아왔다. 허나 ‘코로나19’ 때문에 찬양사역이 막히면서 극도의 어려움에 처했다. 결국은, 단짝친구 사모가 운영하는 요양원에 일자리를 간청했다. 나를 잘 알기도 하지만, 그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어려웠던 때를 생각했음인지 오라는 게 아닌가? ‘직장인’이 된다는 설렘과, ‘일’을 하게 되었다는 벅찬 감격에 나만의 춤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원장을 비롯해서 모든 직원들이 여성인 요양원에, 남자이면서 목사가 사회복지사로 끼어들었다. 금남(?)의 집에 남자 하나쯤은 좋은데, ‘왜 하필이면 목사야?’ 하는 생각에 부러 따가운 시선을 던졌나입이 뽀로통하고 심기가 뒤틀린다 해도 생계가 다급한데 망설일 여지도 생각도 없었다.

 따가운 시선일랑 가슴에 묻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을 시작했다. 습성 상, 결단하기까지는 고민에 번민을 거듭하지만, 일단 결정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일처럼 하는 게 나의 장점이다. 이제 시작했으니 보드라운 시선으로 반기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그 날까지,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할 일에 충실하리다,

                                            (2020. 8.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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