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며느리

2020.09.01 22:54

구연식 조회 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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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며느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우리네의 전통사회에서 혼담이 오갈 때는 가문을 이어갈 대들보를 고르는 일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매파(媒婆)를 통해서 부모들의 행실과 사회적 인간관계, 질병 그리고 객사(客死) 등을 속속들이 알아내어 인성, 건강 등 DNA에 영향을 줄 선천적 후천적 요인들을 짜 맞추어 골랐다. 소위 전통혼례에서는 육례(六禮)를 갖추어 혼사를 치렀다. 어쩌면 전과기록이나 건강검진을 확인할 수 없었던 시대였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아들이 교직에 첫발을 디딜 무렵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왔다. 나도 교직에서 반평생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했기에 아들한테 며느릿감도 아들과 같은 동료 교사였으면 좋겠다고 직업을 주문했지 다른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 친구 부인이 전북대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눈여겨봐둔 며느릿감을 소개했다. 만나는 횟수가 잦더니 서로 결혼할 의사가 있어서인지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는 시기였다. 아내는 며느릿감이 온다고 하니 하루 전부터 장보기, 집안청소 등을 하며 하하 호호 난리였다. 나도 후배 동료 교사를 통해서 며느릿감을 대충 알고 있었으나 며느리 후보가 우리 집에 온다니 그저 좋기만 했다. 아내는 며느릿감 식사 대접 반찬을 너무 많이 장만하여 큰식탁에 가득하여 밥그릇에 담은 밥을 한 술씩 뜰 때마다 반찬 한 가지씩 먹어도 반찬을 다 먹어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차렸다. 나는 며느릿감 덕분에 오래간만에 포식을 했다. 며느릿감이 날마다 왔으면 좋겠다. 내 식구가 될 사람으로 생각해서인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예쁘고 맘에 들었다. 출생지를 물으니 임실군 신덕면 평산신씨 가문의 딸로 아버지나 어머니도 임실군에서 조상 대대로 낳고 자란 임실토박이이며, 특히 아버지는 임실군 신덕면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셨다고 했다.



며느리 고향 임실군은 전주시와 인접 지역으로 친환경적 레저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 도시에서 찌든 피로를 해소할 옥정호, 사선대, 오수충견공원 그리고 노령산맥 동남쪽 산지에 발달한 낙농업으로 임실치즈테마파크와 전국 최초 한국치즈과학고등학교가 있는 등 어디를 가나 청산유수(靑山流水)의 청정고장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무르익어 드디어 상견례 날이 돌아왔다. 상견례 장소는 며느리댁에서 결정한 전주 시내 조용하고 아늑한 한옥에서 치러졌다. 예약된 장소에 도착하니 며느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갈한 양복과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대문에서 반가이 맞이해 주셨다. 아들이 양가 댁을 간단히 소개하는 인사말로 상견례가 시작되었다. 그쪽 바깥사돈은 나보다 6개월 전에 정년을 맞이하셔서 공직에서 있었던 이것저것 에피소드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결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안 사돈은 결혼하여 아기를 낳으면 자기가 아기를 봐주겠다고 하시기에, 나는 답례말로 아들 집은 처가댁하고 가장 가까운 아파트를 사주기로 말씀을 드렸다. 상견례의 음식상은 시쳇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진수성찬이었다. 그쪽 안사돈은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우리 아들 앞에 옮겨 놓기 바빴다. 아내도 질세라 먹을 만한 음식은 며느릿감 앞에 놓았다. 나는 기분 좋은 장면이어서 "양쪽 어머니들이 사위와 며느릿감 챙기느라 음식을 모두 밀어 놓아서 우리 남자 사돈들은 먹을 것이 없네요."라고 하니 상견례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아내는 며느리 혼수함(婚需函) 준비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나전 십장생적 혼수사주함」을 특별 주문하여, 혼서(婚書)와 사주단자(四柱單子)는 내가 다니는 서예실에서 의미 있게 떠듬떠듬 내 글씨로 정성들여 써서 만들었다. 청홍채단(靑紅采緞)은 혼수가게에서 구입했고, 기타 패물은 보석가게에서 해결했으나, 5곡 주머니에 들어갈 팥, 노랑콩, 찹쌀은 해결이 되었는데 목화씨는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 인터넷을 뒤적거려 해결했다. 그런데 마지막 향나무 깎은 것이 문제였다. 제사 지낼 때 쓰는 향나무 깎은 것은 선입견이 허락하지 않아서, 원광대학교 수목원을 찾아가서 관리인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겨우 향나무 가지 하나를 얻어서 집에 돌아와서 연필 깎듯이 깎아서 향나무도 해결하여 혼수함을 무사히 보냈다.



그해 가을에 전라북도 교육계의 수장이셨던 M 교육감이 주례를 자처하셔서 많은 축하객의 성원 속에 결혼식을 마쳤다. 팔불출이 되어도 임실 며느리 자랑을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며느리는 산수가 수려하고 청정한 임실에서 낳고 자라서인지 마음도 청량하고, 임실 우윳빛 피부로 언제 어디서나 수려한 모습이다. 초임 발령 전에 전라북도 교육연수원 직무연수에서 수석 졸업하여 재능이 입증된 교사 며느리다. 예쁜 사람은 예쁜 짓만 한다고, 결혼 후 1년 만에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겨주었다. 보기도 아까운 임실 며느리다. 그런데 임실에서 이런 규수를 데려온 것이 좋아 보였던지 남동생의 큰 딸은 임실군 신평면 총각을 선택하여 임실로 출가했다. 올해까지 아기를 3명 출산하여 임실군에서 받은 500만 원 격려금과 각종 유아용품까지 매월 지원받고 있어, 조카딸은 입이 함박만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세 자녀를 잘 기르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임실에서 얻은 며느리와 조카사위가 있으니 임실에는 사돈집이 두 군데나 있다.


사람들은 흔히 부부가 사랑스럽게 잘 사는 모습을 보면 천생연분이라고 한다. 그 많은 선남선녀의 짝을 찾아주는 것은 하늘의 뜻이지만, 그 뜻을 받들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부부의 연에 어긋나지 않고 서로 양보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천생연분이라고 하며 그 결과를 백년해로라고 한다. 나도 어느덧 우리 가문의 제일 웃어른이 되었다. 우리 가문의 대들보인 며느리의 사랑을 더 챙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웃어른의 자세도 어긋남이 없도록 더욱더 심신을 가다듬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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