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형제로 살자

2020.09.02 14:16

한성덕 조회 수:7

의형제로 살자

                                                    한성덕

 

 

 

 

  의형제란 말에서 ‘의형(義兄)’은, 의리로 맺은 형이나 또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서로 다른 형을 말한다. 한 글자를 더 붙여서 ‘의형제(義兄弟)’란, 결의(結義)된 형제, 또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서로 다른 형제를 가리킨다.

  태풍 비바가 얕은 흔적을 남긴 채 사라진 어느 날, 생각보다 험상궂지 않은 태풍 탓이었나? 하늘은 뭉게구름이 뭉실거리고, 들녘에선 갓 피어난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인적이 드문 시골카페에서는 눈꽃송이 팥빙수가 우리를 반겼다.

  내 인생의 나그네길에서 나는 지금 60대 중반을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살가운 정을 토닥거리며 살아오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사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게 여긴다. 다함이 없는 남은 생애요, 나이 들어 새로운 친구와 정을 나눈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제 와서 또 다른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피차가 부담일 뿐이다.

  최근에 만난 목회자 중에서 1953년생 동갑내기가 있다. 그는 1월생이고 나는 3월생이다. 6.25 한국전쟁 중이어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또래다.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으면, 동갑내기인 것을 알자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동갑내기!’라고 소리쳤을까? ‘동갑네기’가 우리를 한 순간에 묶어버렸다. 그 뒤로부터, 만나면 좋고 헤어지면 섭섭해서 또 만나고 싶은 친구사이가 되었다. 보리죽을 쑤어먹고 쑥버무리를 오물거리며, 옷소매에 누렁코를 쓱쓱 문지르면서 보리밥 누룽지를 자랑하던 그 짠한 시절이 통했나? 거리가 대천이어서 멀기도 하지만, 꿈속에서조차 아른거리지 않던 친구가 눈앞에 선명하다.

  시골의 한 예배당을 편백나무로 리모델링하면서 만난 목사였다. 그는 전문인이고 나는 완전초보 도우미였다. 그가 편백나무를 잘라달라고 주문했다. 이를테면, 50cm로 잘라 달라’면 ‘50cm’를 복창하고, 끝을 비스듬하게 잘라달라면, ‘비스듬하게’를 복창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했다. 그의 옆에서 손과 발이 되어 착착 도와주었더니 그토록 좋았던가 보다. 일도 잘하지만 센스가 만점이라며 매우 만족스럽게 여겼다. 무엇보다도 맘이 잘 맞는다며 미소를 머금고 밝은 시선으로 날 응시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의형제를 맺자고 문자를 보낸 게 아니가? 고등학생 때, 소위 죽고 못사는 친구들 셋이 있어 각기 ‘주, , 선’이라는 애칭까지 지어 부른 적은 있었지만, 의형제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의형제?’내 생애 처음일이다.  

  오늘, 전주 우리 집에서 30분가량 만났다. 식당에서 식사하고 시골카페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긴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사이에 무슨 협약이 필요하겠는가? 만나서 진솔한 이야기나 나누면 되지. 아내들과 함께 우리 넷은 매우 만족했다. 더 나은 내일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어느 좋은 모임에서 불통을 보았다. 소통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껴서 하는 소리다. 소통은 인간관계요, 대화하겠다는 의지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독단보다 져도 된다는 겸손이다. 나도 보이고 너도 보이는 세계요, 네 탓이라는 지적이나 너만 변해야 한다는 아집이 아니다. 소통은 내 탓이라는 반성이자, 나도 변하겠다는 마음자세다. 같이 살자는 상생이지 나만 살자는 독선이 아니다. 공감의 비타민이지, 교만이나 불통의 독약이 아니다. 흐르는 물 같이 생명을 살리고 낮아지려는 섬김이다. 그것이 곧 소통하는 대화가 아니겠는가?

  내 생애 최고의 날에 이런 소통을 기대한다. 얼마나 소중한 친구요, 의형제인가? 세상 끝날까지, 그 어떤 조건이나 거칠 것 없이 의형제로 살고자 한다.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이, 땅에서는 코스모스가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2020. 8. 29. , 의형제를 맺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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