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 길을 갓던 두 군인의 화이부동

2020.09.21 00:32

정영만 조회 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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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길을 갔던 두 군인의 화이부동




국제 평화의 날인 오늘은 아리러니하게도 대한민국 국군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두 군인이 태어난 날입니다. 1920년 충북 음성에서 최경록 장군이, 1922년 중국 상하이에서 김신 장군이 태어난 것이지요.

요즘 획일화된 정의(定義)로는 최 장군은 ‘친일파 군인’이지만, 생전에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예과를 다니다 지원해서 태평양전쟁에 나갔다가 다쳐서 돌아와 일본 육군 준위로 지내다 해방을 맞습니다.

최 장군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처럼 일본을 조국으로 알고 자랐지만, 해방 이후 자신이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미 군정청의 군사영어학교과 미국 육군참모대학을 졸업하고 국군에 입대합니다. 이때부터 최 장군의 원칙주의가 주위에 알려지기 시작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이화장에서 경무대로 이사할 때 군 차량을 보내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최 장군은 4·19혁명 때 참모총장이었던 송요찬의 발포명령을 말려서 역사를 바꾸게 합니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군인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에 따라 군에서 물러났는데, 전 재산이 간이주택 한 칸뿐이어서 부하들이 쌀가마니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민정이양 약속을 뒤엎고 대통령에 취임하자 미국 백악관 앞에서 “박정희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합니다.

최 장군보다 2년 뒤 태어난 김신 장군은 백범 김구의 아들입니다. 중국 공군군관학교와 미국 샌안토니오 공군비행학교를 졸업했고 대일전에 조종사로 참전한 ‘독립투사’입니다. 그는 국군 창설에도 기여했으며 6.25 전쟁 때 유엔군이 500회 이상 출격하고도 실패한,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에 성공합니다. 영화 ‘빨간 마후라’의 모델로서 영화 제작 자문을 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김 장군도 요즘 일부의 편협한 정의에 따르면 ‘쿠데타 세력’입니다. 그는 공군참모총장 시절 5·16에 동조했고 군사혁명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큰 역할을 합니다. 제5공화국에서는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두 장군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은 4.19 혁명 뒤 장면 정부에서 각각 육군과 공군의 참모총장을 지냈습니다. 또 5.16에 동조한 김 장군뿐 아니라 반대한 최 장군 모두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중용됩니다. 김 장군은 중화민국 대사로, 최 장군은 멕시코 영국 일본 등의 대사로 임명됩니다. 두 장군은 공교롭게도 21, 22대 교통부 장관으로 각각 임명돼 중책을 실행합니다. 두 장군은 독재의 산물이라던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으로도 복무합니다.

최 장군은 원칙과 청렴의 군인이었고, 김 장군은 독립운동에 이어 대한민국 공군의 활주로를 닦은 군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을 지금 잣대로 비난하려면, 한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기적적으로 성장할 때 정치적 신조가 달랐던 두 사람은 화이부동(和而不同)하며 자신의 능력을 나라에 바쳤습니다.

갈등의 시기에 궁금해집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의 능력을 빌리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이야말로 지혜로운 것일까요? 형식적 틀로 사람을 재단하지 않고,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야 배움도, 용인도 가능할 것인데 요즘 우리는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을 키우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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