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이가 보고 싶다

2020.10.01 14:26

한성덕 조회 수:1

찰떡이가 보고 싶다

                                                                     한성덕

 

 

 

  1982년 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신학대학원 3학년이 되었다. 그해 519(), 서울 봉천동사건이 서울신문에 실렸다. “견인차 인도에 돌진, 길 가던 모녀 역사(轢死)”라는 큰 활자 밑에, “한 가족 4명 중상(重傷)도”라는 작은 활자를 달았다. 신문에 실린 사건의 전말(顚末)을 읽었.

  19일 하오 2시쯤, 서울 관악구 봉천636 앞길에서, 인천 신영자동차 정비공장 소속 인천 920605톤 견인차(운전자 안창익, 28)가 인도로 돌진, 길을 가던 이순기씨(58 , 관악구 봉천 88507)와 이씨의 딸 전명옥씨(32)를 치어 숨지게 했다. 사고를 낸 견인차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급히 왼쪽으로 핸들을 꺾다가, 길가에 세워둔 서울 28624호 맵시나 승용차(주인 이의민, 36)를 들이받고, 인도로 돌진 이씨 모녀를 치었다.

  견인차는, 이어 길가에 주차해 있는 서울 16629호 포니 승용차 (주인 이영석, 45)를 들이 받은 후, 길 가던 윤태병씨(35, 관악구 봉천 3동 산 81)와 부인 이갑례씨(32), 아들 태호(7) 성호(6)등 일가족 4명을 치어 중상을 입혔다.

  운전자 안씨는, 이날 자신이 근무하는 자동차 정비공장 단골손님으로부터, ‘서울 봉천동에서 차가 고장 났으니 끌어가 달라’는 연락을 받고, 고장 난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가기위해 과속으로 차를 몰다가 사고를 냈다.

  우리가족은 바로 그 현장에서 아주 참담하고 끔직한 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아내와 함께 두 살 된 딸을 데리고 시내버스를 탔다. 둘째는 임신 5개월쯤 되었으니 네 가족인 셈이다. 무주 고향교회에서 시무하셨던 목사님을 뵈려고, 서대문구 문화촌에서 관악구 봉천동까지 갔다. 한 시간거리는 우리도 따분하고 지루한데 두 살 아이는 어땠을까? 버스에서 내리자 아이가 쉬, 쉬했다. 6차선도로를 건너서 시장 길로 20분쯤 걸어가야 하는데 야단났다. 다행히도 파란신호가 막 떨어져 부리나케 건넜다. 건너자마자 아내는 대로변 시장입구에 앉아서 아이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큰길가는 창피하잖아” 아내는 얼른 일어났다. 그때 내 말을 무시하고 “아인데 뭐 어때요” 했더라면, 위에 언급한 상황이 우리에게 덮쳤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다.  

  큰 도로를 건너 일을 보려다가 아이를 업고 시장 안으로 급히 가고 있었다. 1분도 안되었는데, ‘우당탕탕!’하는 괴성이 고막을 때렸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 우리가 잠시 머물렀던 거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바로 그 자리를 견인차가 들이닥친 게 아닌가? 아내는 “악!”하며 입을 막고, 나는 하나님께 ‘감사, 감사’를 외쳤다. 그 현장에서 우리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태어나지도 못한 채 큰 사고를 당할 뻔했던 둘째딸이, 임신 2개월의 몸으로 우리 집에 왔다. 태아 때 받은 충격으로 홱 돌았나? 거꾸로 태어난 딸이다. 그래도 출생 때는 ‘으앙~’ 소리가 퍽 요란했다. 자식을 잘 키워보리라는 나름의 신념이, 중심에서 벗어날 때가 있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그러나 두 딸들은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잘 자랐다. 그 딸도 곧 엄마가 되고, 우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

 

  둘째딸은 아이를 ‘찰떡이’라고 불렀다. 엄마에게 찰떡같이 붙어있으라고 찰떡이라 했다나? 기도할 때마다 ‘찰떡, 찰떡이’ 하니까 우습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된다는 뿌듯함에 더없이 기쁘기도 하다. ‘지혜로운 아이로 자라서 하나님을 잘 경외하길 바란다.’며, 딸의 유아일기 맨 앞장에 썼다.

  딸들에 대한 아쉬움이 늘 꿈틀댄다.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와 미안함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딸의 임신소식에 눈물이 났다. 엄마가 되면 아빠의 심정을 잘 이해하리라는 심리도 작용했다. 그렇더라도 손주를 본다는 기쁨과 감격을 그 무엇과 비교하랴? 태아 때 사선을 넘은 딸에게서 찰떡이가 생겼다. 방실방실 웃으면서 할아버지를 쳐다 보는 손주를 생각하면 마냥 기쁘고 행복하다.

                                                  (2020. 10.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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