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배

2020.10.04 15:11

한성덕 조회 수:1

물배

                                          한성덕

 

 

 

  군복무를 마치고 총신대학교에 진학했다. 내 청운의 꿈은 오로지 목사였다. 입학하면서부터 7(학부 4, 신학대학원 3)의 신학과정이 험산준령으로 보였다. 그 생각만으로도 머리에 쥐가 났다. 1978년인데도 형편이 극히 어려운 신학생들이 많았다. 1학년 때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친숙한 사이가 되어 여러 친구들의 사정을 들어보니 나보다 더한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그 당시 교내식당의 식비가 한 끼에 250원이었다. 일반음식점에서는 사오백 원쯤 한 줄 안다. 외식은 고사하고 교내식당에서 조차 사먹을 수 없는 가난뱅이였다. 딱하다 못해 신세가 처량하고 몹시 사납게 느껴졌다. 어쩌다 지인으로부터 외식대접을 받으면 ‘꿀맛’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했으니, 밥이 ‘꿀맛’임을 몸소 체득한 시절이었다. 지금 어디서 그 맛을 찾으랴? 참 그리운 밥맛이었다.

  입학해서 한 학기는 성남 외가에서 다녔다. 성남시에서 서울의 사당동까지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번갈아 타는데 한 시간이 넘었다. 외가는 아들만 다섯이었다. 아침마다 도시락 5개를 챙긴다는 게 보통일인가? 그래서 내 도시락이 없었고, 점심은 가난이 막아섰다. 형제 다섯이 한 방을 사용했었다. 내가 있는 게 짐이요, 불편하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 틈바구니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것만으로도 미안하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심심찮게 신학대학 친구들이 교내식당으로 이끌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친구들의 눈에 띄지 말자’며 수도꼭지를 물기 시작했다. 엄마젖을 빨던 힘이 아니라도 충분했다. 수도꼭지를 살며시 물고, 적당히 틀어서 꿀꺽꿀꺽 삼키면 그만이었다. 그 물로 배를 채웠으니 영락없는 배불뚝이 두꺼비였다. 나는 이를 ‘물배’라 칭했다. 그 물배 두꺼비(?)가 우리학교 뒷동산을 기어올랐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한심하고 딱한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서였다. 일단은 배가 불러서 감사하고, 동산에 나무그늘이 있어 감사한데, 기도하도록 그물막이 있어 더 감사했다. 그러나 내 사정을 아뢸 수 있는 신, 우리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그 어느 것보다도 감사했다. 물을 마셨으니 무슨 힘이 있겠는가?

  신학교 뒷동산 거기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았다. 나무들은 하나님의 팔이요, 나뭇가지는 하나님의 손이요, 살랑살랑 이는 바람은 하나님의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잎들은 ‘어서 오라’고 환영하는 듯했다. 동산 이곳저곳에서 기도하는 자들이 많았다. 나 같은 처지의 신학생들이리라. 그들의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했다. 서로가 지켜야 할 무언의 약속이자 예의였다. 그래서 큰 소리로 뜨겁게 기도하지만 소리는 작게, 힘으로는 악을 쓰듯이 열정적으로 부르짖었다. 기도를 시작한지 2,30분쯤 된 성 싶은데 땀이 줄줄 흘렀다. 화장실에 갈 일이 없었다. 배가 푹 꺼졌으니 물배에다 원기가 부족한 탓이리라. 그 나머지 시간은 비몽사몽간에 앉아 있다가 내려온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세월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물배 때가 지나고 이제는 모든 형편이 좋아졌다. 가는 곳마다 교회가 부흥되고, 교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흔히 하는 말로 먹는 재미, 쓰는 재미, 사는 재미가 나를 품었다. 신학생 시절에 ‘물배’로 몸부림치며 간청한 덕, 그 기도의 힘이 오늘의 나를 든든히 지탱해준주고 있다고 믿는다.                                 

                                                 (2020. 10.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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