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수선공

2020.10.04 18:38

정남숙 조회 수:12

구두 수선공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부음을 듣고 급히 서둘러 나가는 중이다. 현관에서 신발장 문을 열고 무슨 신발을 신을까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신발장 안에는 신발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내가 요즘 자주 신는 신발들은 내 발에 익숙한 낡은 것들이다. 무심코 늘 신고 다니던 신발을 신으려다 내 눈길이 머무는 것이 있었다. 한 번도 신어보지 않은 새 신발 샌들과 아쿠아 슈즈였다.

 

  둘 중에서 샌들을 집어 들었다. 신발을 들고 망설이는 이유는 이번 나들이가 서울 문상(問喪)이니 입성도 검은색 정장이기에, 신발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신발장 속의 신발들은 모두 제각각 사연들이 있다. 서울에서 정장 스타일로 나들이할 때 신었던 굽 높은 구두들이 태반이었다. 전주에 내려온 후 농장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장 나들이가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리의 생활에 맞게 아이들이 번갈아 편한 신발들을 때맞춰 사서 보내 준다. 편한 단화나 운동화를 신다 보니 이런 맞춤 구두는 신을 기회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신으려고 꺼내 보니 이건 완전 고물이다. 굽이 높으니 걸음 걷기도 어쩐지 편치 않다. 마침 아파트 정문 앞에 구두수선 부스가 있었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아파트 길목마다 부스들을 마련해 준 것 같다. 버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신발장만 차지하고 있어 아까워하던 참에 굽을 낮춰 신어 볼까 하고 구두수선을 맡겼다.

 

  그런데 찾으러 오라는 날짜가 훨씬 지났는데도 부스 문은 열리지 않고 닫힌 채 그대로였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며칠 문을 닫은 줄 알고 별생각 없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몇 달이 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지쳐 길 건너 상가는 알고 있지 않을까 하여 물어보니 진즉 폐업을 하고 그만뒀다는 것이다. 내 구두 세 켤레는 영영 찾을 길 없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에는 구두가 망가져도 수선을 맡기지 않는다. 아예 옛 구두는 신발장 지킴이로 놔두고 아이들이 사다 주는 새것으로 나들이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다 주는 신발이 한두 해 신으면 헤지는 것으로 사주면 좋으련만 값비싼 신발만 사주니 몇 년을 신어도 멀쩡한데 아이들은 또 계속 사온다. 그러니 우리의 습관대로 발이 편한 헌 신발만 신고 다니니 새것은 계속 쌓인다.  

 

  내가 집어든 샌들과 아쿠아 슈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휴가 때 내려온 둘째며느리는 내가 신은 편한 샌들이 낡았다 생각했는지, 달리는 차 안에서 물어보지도 않고 그 즉시 인터넷 구매를 했다. 사지 말라 말려도 소용없었다. 포기하고 이왕 살 테면 조금 값싼 것으로 사라 해도 노인일수록 좋은 것으로 신어야 한다며 최고가의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아직도 멀쩡한데 바로 산 새 샌들을 신을 수 없어 그대로 일 년을 신발장 속에서 나들이할 날을 기다리게 하고 있던 중이다. 아쿠아슈즈도 마찬가지다. 스펀지처럼 가볍게 신을 수 있도록 샌들과 같이 큰며느리가 보내준 것이다. 전부터 신었던 운동화도 많은데 작은 손녀딸이 캐나다 여행 때 제 부모가 사준 것을 사랑 땜도 하지 않고 곧장 나에게 보내줘 편하게 신으라 했다. 그러니 새 신발이 몇 켤레씩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낡은 신발을 버리지 못하여 신고 다니니 해가 지났어도 새 샌들은 그대로 신발장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선택된 새 샌들을 신고 고속버스터미널 앞 계단을 오르는데 신발 뒷굽이 대리석 계단에 걸려 굽이 빠져 달랑거렸다. 얼른 벗어 굽을 맞춰 돌에 박아 봐도 되지 않았다. 출발 시간은 다가오는데 난처한 상황이었다. 포기하고 서울에서 볼 일을 마치고 수선을 할 요량으로 남들이 볼까 봐 엉거주춤하게 걸어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택시 승차장으로 가는 길옆에 구두수선가게가 보였다. 얼른 들어가 물어보니 못만 몇 개 박아주면 좋으련만 굽을 새것으로 갈라 했다. 꼼짝없이 새 신발이 하루아침에 제 뒷굽을 버리고 남의 굽으로 바꿔야만 했다.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앞부리도 덧대라 했다. 그건 솔깃했다. 내 발걸음이 언제부턴가 앞부리를 차면서 걷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신발들이 앞부리부터 망가졌다. 급한 상황인 것을 이용하여 구두 수선공의 수다에 속아 멀쩡한 새 구두를 졸지에 헌 신발로 만들어 신고 온 셈이 되었다.

 

 괜히 내 부주의로 발생한 일을 구두 수선공 탓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TV 광고란에 ‘라면이 익는 시간’이란 자막과 함께 구두 수선공 김병록 씨가 소개되는 것을 보았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10(3) 정도의 작은 점포를 임대해 아내와 같이 구두수선을 하고 있는 분인데 그 분의 선행이 눈길을 끌었다. 50년 가까이 평생 구두를 닦아 모은 돈으로 장만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땅 33142(1만 평, 임야,) 시가 5~7억 원이나 되는 재산을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내놓았다는 기사였다. 그는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도 있겠지만, 파주시와 국가 발전을 위해 소중히 쓰고 싶어 파주시에 기부채납을 신청하게 됐다”고 했다. 더욱이 남편 옆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그의 부인은 남편이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데 어찌 말릴 수 있느냐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천사같았다.

 

  구두 수선공 김 씨의 가정이 넉넉하여 기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동안 노점에서 구두 수선을 해왔다. 그는 20평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며 큰딸은 출가시키고, 아내, 작은딸, 다운증후군을 앓는 1급 지적장애인 아들과 살고 있다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의 선행을 듣고 선한 기부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어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26차례에 걸쳐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 방역물품 7만여 개가 시에 기부됐고, 또 현금 12천 여 만원도 접수되어 파주시는 성금과 방역물품을 취약계층 및 사회복지시설 등에 우선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 씨가 기부한 땅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단다. 11세 때부터 50년 가까이 구두를 닦고 수선해 온 김씨는 6년 전 이 땅을 매입했다. 그는 “노후에 오갈 곳 없는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농사지으며 살려고 사 두었던 땅”이라고 설명했다.

 

 구두 수선공들이 구두를 닦을 때 마음까지도 반짝반짝 빛나게 닦는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옛날엔 지금처럼 아르바이트가 많지 않아 집안이 어려운 어린아이들이 집안을 돕겠다고 나서는 손쉬운 일이 구'두닦이'였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다니며 얼굴과 손등이 깜탱이가 되어 “구두 닦~어!”를 외치며 골목길을 누비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지만 제대로 대접받는 직업은 아니지만,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일관되게 한 우물을 파며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뜻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그는 바로 작은 거인이었다. 나와 동행한 동생이 내 덕분에 짝퉁인 것을 모르고 구두 수선공에 속아 비싼 값을 주고 사 신고 온 구두일지라도 마음을 바꿔 명품으로 믿고 신자고 다독였다.

 

 요즘 젊은이들이나 아이들은 물건을 아껴 쓸 줄을 모른다.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도 몽땅 뜯어버리고 리모델링을 하며 이사 갈 때마다 멀쩡한 가구들을 버리고 간다. 잃어버려도 찾지도 않는다. 물질만능주의라 또 사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들이 우리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갈 때 새것만 추구할 수는 없다. 때론 중고품도 요긴하게 쓸 수 있고 헌것도 고쳐 쓰며 살아온 우리들이다. 구두수선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도 다시 고쳐 주는 정직한 ‘구두 수선공’ 같은 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2020.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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