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나무

2020.10.28 20:22

전용창 조회 수:4

행복나무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돈일까, 명예일까, 권력일까? 이 세 가지를 다 소유하면 행복할까? 사는 동안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행복은 붙잡을 수도 없고 곳간에 쌓아둘 수도 없다. 젊었을 때는 노년에 행복이 찾아올 것으로 믿었는데 막상 노년이 되니 그것도 아니었다. 행복이 없어도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지혜뿐만이 아니라 부귀영화도 받았다. 그럼에도 노년에, 지나 온 삶을 뒤돌아보니 ‘헛되고 헛되다’며 탄식했다. 그러면 누가 행복한 사람일까?

 

  영국의 BBC방송에서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모아 ‘행복 헌장’을 발표했다. 이 헌장에는 10개의 실천과제가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운동을 하고, 즐거웠던 일을 떠올리며,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식물을 가꾸고, TV 시청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미소를 지어라. 또한, 하루에 한 번 이상 문안전화를 하고, 큰 소리로 웃어라. 자신을 칭찬하고, 매일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어라.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몇 가지를 제외하면 남을 위한 ‘베풂’에 있었다. 베풂이 최고의 가치라며 불교에서는 ‘자비와 보시’로, 기독교에서는 ‘사랑’으로 실천하라고 했다.

 

 수필을 지도하시는 ‘K 교수’는 인생에서 수필이라는 친구를 만난 게 너무도 행복하다고 했다. 컬러링을 ‘윤항기’의 노래 ‘나는 행복합니다’로 선정하여 전화하는 모두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그 노래를 들으면 행복한 일이 무엇인가 찾게 된다. 노년에 세 명의 제자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하는데 고희가 지나서 산수를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도 복지관과 문예대학에서 백 명 가까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행복 플러스의 삶이 아닌가?  나와 같이 수필 공부를 하는 시각장애인 ‘K 작가’도 날마다 행복하다고 한다. 펜팔을 통하여 남편을 만나서 행복했고,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유주가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지금은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을 전도하는 특수학교 선생님이시다. 글쓰기는 자신의 호흡이요, 위로요, 치유이고, 정체성이라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곁에 있는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선생님도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나의 지인 중에도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자부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처음부터 돈도, 명예도, 권력도 없었다. 그렇다고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의 가슴속에는 행복의 꿈나무가 자라고 있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니 아파트 대란도 남의 일이고, 자동차가 없으니 기름값 걱정이나 주차난 걱정도 없다고 한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총무 일을 맡아 봉사한다. 올해도 친구들 1박 모임을 기대했는데 ‘코로나19’로 무산되자 여간 서운해 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에게 둘만이라도 여행을 떠나자며 메시지를 보냈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그의 행복 비법을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친구에게서 반가운 답신이 왔다. 숙식은 다 책임질 테니 따뜻한 옷과 세면도구만 준비하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여럿은 여행을 했지만 단둘이는 처음이다. 갑자기 대학교 1학년 때 텐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하룻밤을 보낸 피아골 연곡사가 생각났다.

  “가을 단풍도 보고 피아골이 어때?

 “피아골 좋지.

 

 목적지를 피아골로 정하고 민박을 주문했다. 50년 전이니 그때 우리를 다정히 맞이해 주고, 시끄러운 노랫소리도 관세음 觀世音이라며 들어주시던 스님은 지금도 계실까?

 

  먼 산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늦가을에 나는 친구의 안내대로 전주를 출발하여 순창, 담양을 거쳐서 광주로 향했다. 내가 여행할 때마다 듣는 ‘조영남’의 CD에서는 벌써 ‘화개장터’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에 취해서 가다 보니 어느덧 친구의 ‘스카이 과학교재’ 간판이 보였다. 그는 밖에 나와 있었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십 종류의 과학교재를 설명해 주었다. 내실로 들어가니 조그만 사무실과 주방이 딸린 안방이 있었다.

                                                                       

  “이곳이 나의 가게이자, 사무실이며 집이야!

 “그래?

 

 소박한 그의 말에 동정이 갔다. 사무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컴퓨터에 눈이 간다. 시간이 날 때마다 좋은 글과 영상을 친구들 단톡방에 올려주는 고마운 컴퓨터가 아닌가? 가게 문을 닫고 동승했다. 새벽마다 걷는다는 산책길을 따라갔다. 길가에는 메타스퀘이아가 우뚝 서서 기백을 주었고, 코스모스꽃이 우리의 여행길을 반겨주었다.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아니, 좋아.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출근도 외출도 퇴근도 다 내 자유야.

 “과학교재를 조립하다보면 잡념도 사라져.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어떻게 두 딸을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켰어?

 “나는 별로 한 일이 없어. 딸들이 공부도 잘 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 준비를 다했어.

  그래도 큰딸이라고 요즘엔 “아빠는 언제까지 일할 거야?” 하며 염려해준다며 고마워했다. 큰딸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 손주들도 봐주고, 주말이면 사위랑 딸이 와서 약주도 한 잔씩 하니 행복하단다. 두 딸 가족과 해외여행도 가고, 휴가 때나 명절에는 펜션을 예약해 놓고 교대로 데리러 온다고도 했다.

 

 피아골 계곡은 아직 단풍이 일렀다. 연곡사도 중건한 사찰들이 많아서  옛날 모습은 아니었다. 스님에게는 ‘코로나19’가 비껴가는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당치마을에서의 하룻밤은 서로가 50년 동안 살아 온 삶을 회상하는 밤이었다. 나의 화두는 산봉우리보다 계곡을 거닐던 이야기였는데 그는 가족과 즐거웠던 이야기를 했다. 그는 방학 때 아버지를 따라 여러 학교를 돌며 피아노 조율을 한 시절이 즐거웠다고 한다.

 

 “봉섭이가 가지고 있는 ‘행복나무’ 묘목을 나에게도 분양해줄 수 있어?

 “무슨 ‘행복나무’?

 “묘목이 많이 있을 텐데?

 “있으면 모두 가져가.

 “이것은 묘목 값이야!

 “무슨 돈이야?

 경비를 내가 다 내야 하는데 대략 절반을 탁자 위에 내 놓았다.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미 ‘행복 헌장’을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새벽마다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걸었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소박한 삶에 만족했다. 조그만 기쁨도 큰 행복으로 여겼고, 가져온 우산도 돌아갈 때 짐이 된다며 나에게 주는 베풂도 있었다. 친구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새끼묘목이 살며시 입 밖으로 나왔다. 얼른 두 손으로 잡았다. “나와 주어서 고맙다.” 잘 가꾸어서 번식하면 나도 분양해 주어야지. ‘행복나무’는 열매를 맺을까? 열매가 있다면 무슨 맛일까? 달콤한 첫사랑의 향내일 거야.

 아침에 창문을 여니 가을비가 내리고 먼 산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의 가슴속에 담아둔 ‘행복나무’도 가을비를 맞고 있었다.

                                                                 (202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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