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오영 수필의 사상과 기법

2020.10.31 00:16

김우종 조회 수:102

尹五榮 隨筆의  思想과 技法
                                                               

                                                                                                  金宇鍾
 

-한국수필문학사의 큰 봉우리와 작은 조약돌-
  수필가 윤오영이 누구인지는 <조약돌>하나만 봐도 충분히 설명된다. 그의 수필집 <孤獨의 反芻> 첫 번째에 실린 작품이다.
  윤오영은 한국수필 문학사에서 누구보다도 찬연히 흘립한 봉우리로 기록될 인물이지만 생존 시에 작자 자신이 본 자화상이나 세상에 비추어진 윤오영은 남들이 앞을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동산이다. 그렇지만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참으로 많은 매력을 지닌 정겨운 조약돌이며 작자 자신으로서도 그 정도의 매력은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조약돌이었다.
  그는 조약돌을 주무르고 조약돌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자기 자신이 불쑥 ‘조약돌 같은 인생’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수필은 조약돌에 대한 설명서이면서 작자 자신에 대한 설명서가 되기도 한다.

    부드럽고 매끈하다. 玉도 아닌 것을, 구슬도 아닌 것을, 그러나 玉이면 별 것이요 구슬이면 별 것이냐. 곱고 깨끗한 것이 부드럽게 내 손에 쥐어지면 그것이 곧 玉이요 구슬이지.  그윽하고 맑은 것이 내 가슴에 울어주면 그것이 또 거문고다. 빛도 없는 이 玉이, 소리도  없는 이 거문고가 더욱 정겨웁고 아늑하다. 길에 버리면 주워 갈 이도 없을 이 玉이기에,  발에 채면 돌아 볼 이도 없을, 이 거문고이기에 더욱 안타까이 어루만져 본다.

  이 수필의 모든 단어와 문장은 조약돌에 대한 설명서지만 그것은 윤오영 자신을 꼭 닮았다.
 윤오영은 이 세상에서 옥도 구슬도 아니었다. 그는  남들의 관심을 끌만한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작가였고, 그는 길에 버리면 주워 갈 이도 없을 만큼  재산적 가치나 학자적 가치도 알려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옥도 구슬도 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인품이 곱고 맑고 다가서면 정겨웁고 아늑하기에  옥이나 구슬은 아니라도 막돌이 아닌 조약돌이었다.

 ‘길에 버리면 주워 갈 이도 없’는 그를 그래도 주워간 사람이 있기는 했다. 대학 졸업장도 없는 백수를 보성고등학교 교장이 알아보고 교사로 임명해서 극진히 모셨었다.
 피천득도 그의 진가를 알고 가끔 보성고등학교 교무실로 찾아오고, 그가 작고한 후에도 그를 꽤 그리워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예지나 잡지와 신문은 그에게 원고청탁을 하지 않아서 수필을 써도 발표할 데가 없었다. 그는 수필에서 단연코 최고의 경지에 있었지만  조약돌처럼 빛도 소리도 없는 작가였다. 작품의 진가보다 학별과 사회적 지위와 유명도 등을 먼저 쳐주는 풍조 때문이었다.

-세련된 문체의 매력-
  그의 수필은 매우 세련되고 탁마된 문장이지만 옥이나 구슬처럼 화려한 수식어나 기법의 잔재주를 과시하려 하지 않았다. 또 감격이 지나치게 넘쳐서 눈물을 콸콸 쏟거나 가슴이 터지게 할 만큼 작품 속에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노출시켜 나가지 않았다. 작품 내용 자체가 격랑으로 배를 뒤집어엎을 듯 한 바다보다는 잔잔한 호수 같으면서 그  내면의 깊이가 주는 감동이 잔잔하면서도 오랜 지속성이 있어서 그것은 화려한 옥이나 구슬보다는 조약돌에 비유될 수 있다.
 <참새>에서 윤오영 수필의 특성을 다시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참새는 공작같이 화려하지도, 학같이 고귀하지도 않다. 꾀꼬리의 아름다운 노래도, 접동새의 구슬픈 노래도 모른다. 시인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玩賞家에게 팔리지도 않는 새다. 그러나 그 조그만 몸매는 귀엽고도 매끈하고, 색깔은 검소하면서도 조촐하다. 어린 소녀들처럼 모이면 조잘댄다. 아무 기교도 없이 솔직하고 가벼운 음성으로 재깔재깔 조잘댄다. 쫓으면  후루룩 날아갔다가 금방 다시 온다. 

  여기서 보듯이 그의 문장은 간결체다. 수식어를 아끼면서도 사물을 정학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문장에 압축적 긴장미가 살아난다. 그리고 율동이 있어서 더 경쾌하다.
  이런 간결성 압축성 율동미가 ‘참새’ 묘사에서는 매우 적절한 비교법으로 한 마디씩으로 완결되어 나가고 있다. 공작과의 비교로 화려함 및 크기의 대비, 학으로 고귀함과 비속함의 대비, 꾀꼬리로 목소리의 대비, 접동새와의 비교로 구슬픔과의 대비 등이 그렇다. 참새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만큼 정확한 형상화를 통해서 대답해 주기는 쉽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작자는 참새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나간다. 예리한  관찰력과 매우 풍부한 상상력이 만들어 나가는 참새 이야기다.

 -윤오영의 미의식과 고향의 상실-
  이 같은 조약돌이나 참새 이야기에는 작자의 심미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그것들은 현대도시문명의 대중들이 지향해나가는 화려함, 찬란함, 많고 넘침, 유명함 등과는 다르다. 맑음, 정겨움, 겸허함 등의 수식어가 어울리는 것이 조약돌이나 참새다. 그런데 작자는 우리가 고향을 잃듯이 이를 잃어가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크다.
 <순아>에 그려진  시골처녀 순아도 그렇다.
“농촌에는 물이 있어요. 물 잡수러 오세요. 미큰한 수돗물, 찝찔한 펌프물이 아닌.....”
순아는 작자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  그전에 시골에서 순아를 만났을 때 작자가 이곳이 왜 좋으냐고 그에게 물었다가 “이 마을에서도 너의 집이 제일 명승지로구나” 하고 대답했다는 처녀의 편지다. 그녀는 그 때 또 이렇게 말했단다.
 “저녁 때 살구나무 위로 달뜨는 것만 보면 정들만한 집이지요.”
 이런 순아를 작자는 훗날 서울 무교동의 다방에서 보게 된다. 그녀가 다방 레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다시 찾아 갔지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어느 술집에서 순아 비슷한 여자를 또 보게 된다. 순아는 아니지만 순아처럼 자기 고향이 제일 좋다던 시골 처녀들이 모두 그렇게 고향을 떠나서 다방 레디가 되고 술집 여자가 된 세상 얘기를 쓴 것이 이 수필이다.
  작자는 이를 자연의 붕괴요, 시인의 운명(殞命)이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물론 맑은 물이 넘쳐흐르는 시골의 자연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때 묻지 않고 건강한 처녀 순아를 말한다. 그리고 ‘시인의 운명’은 “농촌으로 물 잡수러 오세요”라고 한 순아의 그것을 ‘시인의 초대장’이라고 했으므로 시를 잃어하는 현대 한국사회를 말한다.
  이런 수필에서 볼 수 있는 작자의 인생철학이나 심미의식은 다음과 같다.
 그는 작고, 검소하고, 오염되지 않고, 정겨운 것을 좋아 한다. 이와 반대로 화려하고 밝고 힘 있고 너무 눈에 띄는 사물이나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약돌이나 참새는 모두 작다. <염소>에 나오는 검은 염소들도 다른 염소들보다 작은 편이며 그 중에서도 어린 염소에 대한 관심이 더 깊다.
 <붕어>도 새끼 붕어들 얘기다.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월척은 그의 심미의식에는 끼지 못한다.
 그리고 조약돌은 작자의 이불 속에도 들어갈 것이요 참새는 우리들의 집 처마 밑에서 낳고 자란다. 그만큼 신분이나 계급이 작자보다 높지 않거나 낮다. 그리고 색깔도 겸허하고 요란스럽지 않다. 하는 행위도 검소하고 솔직하고 때 묻지 않았다. 쫓아 버렸는데도 곧 돌아오는 모습이 아주 꾸밈이 없이 솔직해서 좋다.
  순아가 그런 시골 처녀다. 그리고 <소녀>에 그려진 열세 살짜리 아가씨도  그렇다. 모두 때 묻지 않은 맑은 향기가 나며 화려함은 없다. 비싼 화장품에 성형수술에 짝퉁이든 진짜든 명품으로 감싸고 다니는 된장 녀가 많은 도시와는 전연 상관없이 시골에 숨겨진 그들이 작자가 찾는 보물이고 미의 세계다.
  그는 <농촌>에서 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그는 갑자기 비를 만나서 시냇가에 있는 수각(水閣)으로 올라갔다가 누워서 잠이 들어 긴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었었다. 이 때 한 여자가 아이놈과 함께  밀젬병, 초장, 오이김치, 참외 등을 담은 쟁반을 들고 나타난다. 
  “비에 막혀 못 가시는 것 아니에요, 아침나절에 오셔서 지금까지 점심도 안 하셨으니 잡수시래요. 우리 어머니가.”
여자는 아이에게 이렇게 시켜 놓고 먼저 돌아 간 것이다. 건너 편 초가에서 아침부터 이 사나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던 셈이다.
  또 작자는 <하정 야화 (夏情 夜話>에서 뒷산 바위에 걸터앉아 달을 쳐다보고 있는 월하미인도를 그리고 있다. 작자를 보고 “선생님 댁이 이 근처세요”라고 먼저 말을 던진 여자다. 앞의 초가집 여자도 남편 없이 혼자 애 데리고 사는 여자이고 이 여자도 어쨌든 여기서는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다. 작자에게 먼저 말을 걸었거나 밀젬병 쟁반을 먹여준 여자이니 작자가 좋게 봐줬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보다는 화려하게 밖에 드러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고독한 듯한 여인상에 작자의 마음이 끌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소재를 통해서 작자가 보여주는 것은 <조약돌>을 통해서 말한 것과 거의 공통적인 심미의식이다. 옥이나 구슬처럼 반짝이며 들어나지 않으면서 은은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 그 아름다움은 때 묻지 않고 정답고 겸허하고 거짓 꾸밈이 없는 것 등을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것은 잘 들어나지 않기 때문에 찾아나서야 하고 역사 속에서 스러져 가고 있기 때문에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수필 쓰기는 그 같은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는 작업이기도 하다. 
 
-허무주의적 달관과 역사의 그림자-
  인생관으로 보면 이 같은 아름다움 찾기의 모티브는 인생에 대한 적지 않은 좌절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면서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아름다움을 찾고 거기서 자신을 달래며 살아 간 것 같다.
  사실로 <염소>는 그런 비관적 인생관이 농후하다. 모든 인간 존재를 언제 소금 한 줌 입으로 받아먹고 몇 차례 캑캑거리다가 죽을지도 모르면서 운명의 줄에 끌려서 순순히 따라가는 염소에 비유하고 작자 자신도 여기서 예외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작자는 이 수필에서 자기도 그렇게 끌려가고 있다는 직접적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자 자신도 그 염소가 지나간 그 보도 위로 걸어오는 것이라고 한 것은 염소와 작자의 운명적 동일성을 나타낸다.
 이 작품은 특히 우수한 명작이지만 <조약돌>에서 나타낸 작자 자신의 자화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내면서 비관 주의적 인생관이 뚜렷하다. 그렇지만 감상적 패배의식은 아니다. 그는 부귀영화 권세 등, 세속적 가치를 활달하게 벗어나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처럼 그런 가치에 조금도 매이지 않는 확고한 자유인의 의식을 지니고 달관한 사람이다. 다만 그런 허무주의적 비관론의 그림자가 학문적 지식이나 문화의식은 높아도 이에 비해 넉넉지 못했던 가난한 살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속물주의와 해방 후의 추악한 역사적 모순이 드리운 슬픈 그림자라는 의미에서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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