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감나무

2020.11.11 11:13

구연식 조회 수:9

고향 집 감나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고향 집 부상마을 뒤뜰에는 온갖 유실수를 많이 심어놓아서 추석 차례때는 과일을 사지하지 않아도 햇과일로 차례를 모셨다. 그중에서도 감이 제일 풍성하여 나는 과일 중에서도 감을 유난히 좋아했다동생들은 가을이 오고 먹음직한 감을 보면 내가 생각나는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앞다투어 감을 보내준단감, 홍시, 곶감 그리고 감 껍질 말린 것, 심지어는 떨떠름한 땡감도 좋다.

 

 어렸을 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감나무 밑에 떨어진 땡감을 주워서 구정물 통에 넣었다가 2~3일 후에 꺼내서 맑은 물에 씻어 먹으면 떫은맛은 사라지고 아삭거리며 달짝지근하여 주전부리로 그만이었다. 그래서 뒤뜰이나 밭두렁에 심은 감나무 밑은 떨어진 땡감을 주으러 간 발자국이 반질반질했다. 땡감 줍는다고 온 동네 아이들이 새벽부터 감나무 밑 농작물을 모두 다 밟아버려 논·밭주인은 언제나 성화를 댔다.

 

 형제가 많았는데도 생전 부모님은 장남인 나를 그리도 챙겨주셨다. 감나무에서 제일 크고 잘 익은 감은 큰아들 몫으로 생각하셨는지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하시고 내가 집에 들르면 그때서야 감나무 장대로 따서 나에게 주셨다. 어머니는 땡감은 감 장아찌를 담으셨고, 물러 터진 감은 식초를 만들어 조미료로 사용하셨다. 객지에서 학교 다니던 내가 제때 집에 오지 못하면 나에게 줄 홍시는 장독대 항아리에 감추었다가 집에 가면 앞치마로 물기를 닦아 입에다 넣어주셨다. 그런 것을 보고 자란 동생들은 감 계절이 돌아오면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감 선물을 지금도 하고 있다.

 

 언제인가 정읍 산내면 백필리 마을로 출가한 여동생 시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을이 산촌이어서인지 산과 들, 가로수, 울타리 등이 온통 감나무 일색이어서 다른 나무는 뿌리내리고 살 틈을 주지 않았다. 사돈집 마당에 들어서니 정자나무보다 큰 감나무가 버티고 서있었다. 이미 떨어져 수북이 쌓인 감 잎사귀는 가을 뙤약볕에 고실고실하게 말라버려 살짝만 밟아도 금방 바스락거렸다. 뒷동산에는 검은 바위들이 고래처럼 여기저기 엎드려 있는데, 그 고랫등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깎아낸 감 껍질을 말리고 있어 처음 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집에 돌아올 때는 사돈댁에서 먹시 한 포대를 따주셨다. 그 뒤부터 정읍 매제는 가을이면 가장 잘 익고 맛있는 감을 한 상자씩 보내주는 것이 가을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아내도 내가 감을 좋아하는 줄 알고 야외 나들이나 시장에 가면 장보기에서 감이 빠지지 않는다. 도시에서 낳고 자라서인지 시골의 우리 집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40여 년 전부터 유실수를 많이도 심어 놓았다. 그중에서도 단감나무가 토양에 맞는지 제일 잘 컸다. 울타리 밖 길모퉁이에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한 정자나무 역할을 하고 가을에는 탱글탱글한 주황색 감이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려있어 동네 사람들의 눈요기와 입맛 요기로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깨 높이에 있는 감은 동네 사람들 것이 되어버려 자유롭게 따먹고 있다. 우리 집은 중간 높이 것만 따먹는다. 제일 꼭대기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 놓아 산새들이 날아와 즐겨 먹고 있어, 언제부터인가 제일 아래쪽은 동네 행인들 것이고 중간 부분은 우리 가족 몫이며 제일 꼭대기 것은 텃새들의 겨울 식량이 되었다.

 

 요 며칠 전 아버지의 제삿날이어서 조금 일찍 시골집에 갔었다. 동생은 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감과 형제들에게 나누어줄 감을 손이 닿는 곳은 주섬주섬 감을 따고 높은 곳은 장대로 따고 있었다. "형님, 조금 있으면 된서리가 와서 단감은 금방 물러버리고, 산새들이 이것저것 마구 쪼아놓아서 먹을 수 없으니 하루빨리 따가세요.". 그날은 뉘엿뉘엿 어두워져서 감을 딸 수 없어 다음날 다시 와서 따기로 했다.

 

 다음날 오전에는 신아문예대학 수필반에서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고향집 단감나무 아래로 갔다. 벌써 감잎은 단풍이 물들어서 떨어졌고 분홍빛 감들은 방긋이 웃어주었다. 그런데 모든 감이 돌아가신 부모님, 멀리 떨어진 동생들 그리고 귀여운 손자들로 보여 차마 딸 수가 없어 망설였다. 해가 잠시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니 그때서야 본래의 감 모습으로 보였다. 동생이 만들어 놓은 감나무 장대로 감을 따서 헌 비닐 비료 포대에 넣어 전주로 왔다. 옆집 아들집에 들러서 감을 나누어 주면서 손자에게 40여 년 전에 할머니가 증조할머니 집에 감나무를 심었던 이야기부터 단감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우리 집에 돌아와 나머지 감은 냉장고에 보관했다. 냉장고 속에 보관한 고향 집 감은 하도 사연이 많고 먹기도 아까워서 당분간은 눈요기만 하기로 했다.

                                                                                   (2020.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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