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2020.12.05 14:04

최상섭 조회 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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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2114aec9.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333pixel

인터넷에서 퍼온 이끼 사진



퇴행성 관절염으로 등산을 못한 지가 3년이 넘었다. 그 이전에 나는 모악산 (母岳山. 795m) 중턱인 연분암(燕盆庵)까지 5년 동안 일요일마다 오른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모악산이 대단히 큰 산맥이며 일본인도 숭상했던 영산(靈山)임을 실감했다. 그중 철 따라 피고 지는 우리 풀꽃은 과히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며 이 풀꽃들을 보고 몇 편의 작시(作詩)와 수필을 썼는지 셀 수가 없다. 편백나무 숲을 지날 때는 피톤치드(Phytoncide)의 고마움보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풀꽃에 취해 여기가 무릉도원(武陵桃源)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등산을 할 때 내 눈을 사로잡는 식물은, 봄에는 줄고사리와 몇 군데 자생하는 윤판나물이었고,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면 드물게 돋아나는 천남성과 오솔길 따라 환영의 무리인 듯 *무성화 꽃잎이 나풀대는 산수국이었다. 내려올 때는 으레 비닐봉지에 이끼를 채취해서 가져오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바위 위에는 마른 이끼가, 개울가에는 물먹은 파란 이끼가 하도 많아서 그냥 있으려니 했었다. 그 이끼는 내가 *분경을 만드는 소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음지식물이고 수생식물인 이끼는 늘 푸르러 그 모양 그대로가 귀엽다. 모악산에는 너무 많이 자생하여 일반 등산객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사시장철 푸르지만 겨울철에는 이끼도 동면하는지 그 색깔이 갈색으로 변한다.


작년에 나는 근무하는 직장에서 180여 점의 화분을 만들어 가을꽃 전시회를 했었다. 여기에 분경 10여 점을 만드는 데 주력했고 이끼는 구색을 갖추는 소재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그때는 이끼가 없어서는 안 될 소재이거나 감동적이라는 생각은 갖지 못했었다. 응당 응달지역에 가면 많이 자생하는 식물이어서 흔하게만 여겼다. 그러나 오늘 뜻밖에 상기의 사진 한 점을 보고 이끼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 분경 속에서는 조연의 역할을 했지만 하잖은 반찬이 입맛을 돋우듯 이끼가 빠지면 이빨 빠진 모양새다. 새삼 이끼의 귀여움과 고마움을 이 사진 한 장으로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끼는 아무 곳에서나 자생하지 않는다. 언젠가 분경을 만들다가 이끼가 떨어져 3,000여 평의 직장 주위를 찾아다녔으나 허사였다. 꼭 응달지역이어야 하고, 언제나 습지의 조건이 갖춰져야 이끼가 자생한다. 새삼 이끼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겨지며 개똥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하면서 속으로 모악산에 자생하는 이끼의 소중함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끼는 돌을 좋아하며 바위에 파란 생명을 불어넣는 수호천사로 모악산의 계곡을 푸르게 수놓는 필수식물이다.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이 어찌 주연만으로 이루어질까? 주연과 조연이 함께 어우러질 때 멋진 영화(映畫)가 탄생하듯 우리의 생활도 칡넝쿨처럼 한데 어울려 살 때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

(2020. 12. 5.)



☆ 무성화 : 꽃의 가장자리에 핀 꽃잎으로 암술과 수술이 없으며 꽃 이파리를 나풀대어 벌‧나비를 유혹하는 꽃잎.

☆ 분경 : 낮고 넓은 화분에 격에 맞는 돌을 안착하고 작은 인공정원을 만든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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