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작은공원의 오후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금요반 박제철
집 곁에는 둘레길이 500여 미터쯤 되는 작은 공원이 있다. 제법 오래된 공원이라 그런지 여러 종류의 나무숲이 울창하고 주민을 위한 운동기구도 있다. 비가 와도 운동할 수 있는 배드민턴 구장도 있으며 여기저기 오솔길도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와 찬바람이 거칠게 불어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단풍이 볼품없는 낙엽으로 변하여 나뒹굴고 있었다. 공원을 청소하는 할아버지 두 분이 오솔길에 굴러다니는 낙엽을 쓸어 모아 큰 포대에 담고 있었다. 아파트나 공원의 청소부, 길거리의 청소부들은 흔히 초겨울을 낙엽과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엊그제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강천산엘 갔었다. 초겨울의 문턱에 들어선지라 대부분의 단풍은 낙엽으로 변했고 어쩌다 한 그루씩이 아직도 사람들의 사랑을 더 받으려는 듯, 떠나가려는 붉은 단풍잎을 붙잡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단풍이 아름답다며 그 앞에서 사진을 찍지만 단풍으로서 일생을 마치고 나무 아래 수북히 쌓인 낙엽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싶었다.
만물이 소생하고 생기가 돋는 봄철이면 연두색 싹이 돋아나고, 여름이면 녹음으로 변하며, 가을엔 단풍으로 변하고, 초겨울이면 낙엽으로 나뒹구는 것이 나뭇잎의 일생이다. 이것이 곧 만물은 생로병사한다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나도 연두색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고, 녹음같은 청년기도 있었으며, 지금은 단풍같은 노년기에 서 있다. 또 언제일지 모르지만 낙엽같이 인생을 마무리하는 날도 올 것이다.
은행나무나 단풍나무를 보면 여느 나무같이 처음에는 연두색 잎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지만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뭇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벚나무는 잎도 나오기 전에 화려한 꽃을 피워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벚나무의 단풍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단풍으로 변하기도 전에 벌레에 갉아 먹히고 검게 변하여 볼품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 벚나무의 단풍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초근목피나 일생의 삶이 마찬가지인데도 그걸 모르는 친구나 선배도 있다. 가을이면 최고라며 으스대고 뽐내던 단풍이나, 봄날의 화려함을 잊지 못하는 벚나무의 단풍도 생을 다하면 똑같이 하찮은 낙엽으로 변한다. 낙엽으로 변해서까지 옛날의 찬란했던 과거를 못 잊어하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일거리로서 전쟁을 하는 사람, 가는 인생을 논하는 사람, 맛깔난 시나 수필을 쓰는 사람들의 대상일 뿐이다.
아름다운 단풍은 예쁜 소녀들의 책갈피 한 쪽을 차지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바람까지야 갖지 않지만 아름다운 노년의 빨갛고 샛노란 단풍일까? 아니면 한때는 화려했지만 검고 볼품없는 벚나무의 단풍일까? 바람결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단풍들이 나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비바람이 휙 불었다. 단풍들이 우수수 떨어져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굴었다. “요놈의 바람 때문에 낙엽도 못 쓸겠구먼.” 바람과 낙엽을 원망하며 담배를 꺼내 피워댔다. 그리고 또 싸리비를 잡고 낙엽을 쓸어 모은다. 어제까지도 아름다움을 뽐내던 단풍나무 잎이나 은행나무 잎이나 볼품없던 벚나무 잎이나 청소부의 비질에 같이 한타령으로 포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엔젠가는 거름으로 변하여 다시 나무들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20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