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오연희

가을이 오면

posted Oct 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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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오연희


"제 여자 친구에요”
막내 외손자 말에
덥석 내 손 잡으시던
아흔셋 시외할머니

코스모스
온 집을 울타리 치던
눈부신 가을날
“밖에 날 데리러 왔다” 시며
목욕하고
새 옷 갈아 입으시더니
이웃 나들이 가듯
먼 길 떠나셨다

할머니 잠자는 선산(先山)
코스모스 만발한 길을 오르며
막내 외손자와 그 여자친구
해마다 오자며
두 손 꼭 잡았다

몇 해인가
잊고 살았던 코스모스
파머스 마켓 꽃가게 한쪽 구석에
서너 단
무너진 약속처럼
고개 푹 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