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오연희

무너지고 있다

posted May 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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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있다/오연희


종종 걸음 마음만 앞서가던 아이
훌쩍 자란 보폭으로 비행기에 오른다
한 폭 밖에 되지 않는
도랑 건너듯 폴짝 하면 되는 거리
머뭇거리던 마음 한자락 바짝 당겨 세운다
논두렁길. 아홉산. 알감자 품은 들판
사람은 떠나도 산천은 유구하다는 말
오래 전에 무너졌지만
그곳에 세워진 낯선 시선들
눈 둘 곳을 잃은 작은 보폭의 아이
차라리 눈을 감는다

아이가 자라던 집에는 늙은 부모님
여직 아이를 기다리고
잠시 맡겨둔 다락방의 이불 몇 채
비행기 소리 날 때마다 웅성거린다
고무줄 놀이. 술래잡기. 깡통차기…
맘껏 휘젓던 동네 어귀에
숨쉴 틈 없이 박혀있는 차들
그 사이를 미친 듯이 달리는 오토바이
가슴 섬뜩해진 동네 어르신의 웃음소리
헛헛하다
무너져가는 늙음의 경계 대책 없이 바라보며
조글조글한 웃음 속내 들락거리는
눈빛하나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