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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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8.08.22 08:24

야박한 일본식당

조회 수 157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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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집 근처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우동집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몇 번 간적이 있는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모습을 갈 때마다 보게 됩니다.
저는 보통 런치스페셜 1번을 주문합니다. 우동과 튀김 그리고 몇 종류의 단무지가 정갈하게 담겨있는 벤또입니다. 풍성한 느낌은 안 들지만 담백하니 맛이 괜찮습니다. 보통 외식을 하고 나면 찬물을 마구 들이키곤 하는데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그런 증세가 별로 없습니다. 이웃 분이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일거라고 일러줍니다. 음식가격이 그리 싼 것도 아니고 위치가 그렇게 좋은 곳도 아닌데 늘 그렇게 손님이 붐비는 것을 보면 역시 음식은 ‘맛’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제저녁 바로 그 식당을 남편과 함께 갔습니다. 제가 속이 좀 거북해서 가벼운 음식이 먹고 싶었거든요. 진짜 맛있다’고 남편에게 몇 번 강조한 뒤 저는 뎀뿌라 우동을 남편은 닭고기 우동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우동 한그릇만 달랑 나왔습니다. 김치대용이 될 만한 단무지 같은 것이 당연히 나오는 줄 알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줄 낌새가 아니었습니다. 우동이 반쯤 없어진 뒤에야 대충 감이 잡혔습니다. '단무지 좀 주세요' 그제서야 부탁했습니다. 왔다갔다 분주한 저 웨츄레스 도무지 소식이 없습니다. '김치좀 더주세요’ 하면 총알같이 가져다 주는 한국식당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참다못해 저희 테이블을 담당하던 웨츄레스가 보이길테 ‘단무지…’하고 힌트를 줬습니다. 오더 해 놓았다며 일본여성 특유의 그 상냥한 웃음을 흘리고는 그만이었습니다. ‘오더?’ 단무지 하나를? 아…..그제서야 눈치를 챘습니다.

그전에 몇 번 갔지만 그때마다 다른 분이 음식값을 내서 단무지 하나도 음식값에 추가되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그만두라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우동이 식든지 말든지 아주 천천히 먹었습니다. 거의 몇 가락 남았을 즈음 무려 4불이나 하는 단무지가 나왔습니다. 커다란 종지에 느슨하게 잘라놓은 단무지를 먹으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우동하나를 시켜도 김치나 깍두기정도는 따라서 나오고, 혹시 먹다가 모자라면 돈을 더 내지 않아도 당연히 더 주는 한식당의 풍성함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풍성해 버리는 것 또한 얼마나 많은지 말입니다.
.
일본인의 정갈함과 친절 그리고 야박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먹을 만치만 주문하도록 하는 음식문화 우리의 풍성한 식당문화와는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은 매콤한 신라면에 시큼한 총각김치나 와작 깨물어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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