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대학 졸업이 가까워오자 슬슬 고민이 되었다.
대학 끝나고 집으로 들어온 자녀와 부딪힐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엄마들의 하소연이 귀에 쏙쏙 들어오기 시작했다. 웬만한 것은 엄마가 챙겨 줄 것을 기대하는 자녀와, 자녀가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바라는 부모와의 입장차이로 인한 갈등이 만만찮다는 소리, 머리 굵어진 자녀들에게 섣불리 간섭하면 곤란하다는 이야기, 아쉬우면 보따리 싸서 들어왔다가 갈등이 심하면 다시 나가기를 반복한다는 사연등등…공감의 눈빛을 주고 받는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좋은 시절 다 갔구나 싶은 생각에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기숙사로 떠난 후의 빈자리를 그처럼 아쉬워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었다. 다른주로 가겠다는것을 대학원 공부와 일 둘다 제대로 하려면 현실적으로 힘들것 같아 슬며시 붙잡아 놓고는 내가 왜이러나 싶기도 하고, 세월이 참 얄궂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황이 달라졌음을 인정하고, 엄마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방법일것 같았다. 아들이 없는 동안 누렸던 것 중에 포기해야 될 부분을 찾아보았다. 글 쓰느라고 보낸 시간들일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썼다. 작년 6월에는 ‘시집’과 ‘산문집’ 두 권을 동시에 펴냈고 이젠 다른 장르에도 도전해 보겠노라고 의욕을 불태우던 차였다.
그 시간의 반을 뚝 잘라 아들에게 그리고 그 동안 소홀했던 가정에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핏하면 밖에 나가 사먹던 음식을 내 손으로 만들고, 집안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이 가정에 투자하겠다는 의미였다. 함께 사는 것도 기회인데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도 했다. 그렇게 마음 바꾸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들이 아파트의 짐들을 매일 조금씩 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구석 저구석 짐만 부려놓고는 그만이었다. 마냥 늘어놓기 시작하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폭탄 맞은 것처럼 어수선해졌다. 방정리 좀 하라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눈에 거슬리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잠깐 집에 다니러 왔을때 슬쩍 던져보던 잔소리정도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눈치보기’가 시작되었다. 감정을 상하지 않고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치를 보아하니 아들역시 4년 만에 부모와 합쳐 사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몰라 황당해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아들과 한집에 산지 반년이 지난 지금, 위태위태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굴러가고 있다. 엄마 간섭에 불꽃 팍팍 튈 것 같던 처음의 태도도 몰라보게 누굴누굴해 졌다. 아들은 저대로 바쁜지 집에서 음식 먹는 날도 얼굴 맞대고 느긋하게 이야기 나눌 시간도 많지 않다. 시간에 쫓기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다. 드물긴하지만 밤늦게까지 엄마랑 노닥노닥 대화가 잘 풀려 나가는 날은 이런 행복도 괜찮구나 싶다.
내 주장은 조금씩 늦추고 ‘눈치보기’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들도 나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일이다. 기분 좋은 ‘함께’ 를 원한다는 뜻일 게다. 그 눈빛 속에는 내 생각이 상대의 가슴까지 편안하게 가 닿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들어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평생 마음에 두고 행해야 할 일 같다.
대학 끝나고 집으로 들어온 자녀와 부딪힐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엄마들의 하소연이 귀에 쏙쏙 들어오기 시작했다. 웬만한 것은 엄마가 챙겨 줄 것을 기대하는 자녀와, 자녀가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바라는 부모와의 입장차이로 인한 갈등이 만만찮다는 소리, 머리 굵어진 자녀들에게 섣불리 간섭하면 곤란하다는 이야기, 아쉬우면 보따리 싸서 들어왔다가 갈등이 심하면 다시 나가기를 반복한다는 사연등등…공감의 눈빛을 주고 받는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좋은 시절 다 갔구나 싶은 생각에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기숙사로 떠난 후의 빈자리를 그처럼 아쉬워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었다. 다른주로 가겠다는것을 대학원 공부와 일 둘다 제대로 하려면 현실적으로 힘들것 같아 슬며시 붙잡아 놓고는 내가 왜이러나 싶기도 하고, 세월이 참 얄궂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황이 달라졌음을 인정하고, 엄마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방법일것 같았다. 아들이 없는 동안 누렸던 것 중에 포기해야 될 부분을 찾아보았다. 글 쓰느라고 보낸 시간들일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썼다. 작년 6월에는 ‘시집’과 ‘산문집’ 두 권을 동시에 펴냈고 이젠 다른 장르에도 도전해 보겠노라고 의욕을 불태우던 차였다.
그 시간의 반을 뚝 잘라 아들에게 그리고 그 동안 소홀했던 가정에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핏하면 밖에 나가 사먹던 음식을 내 손으로 만들고, 집안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이 가정에 투자하겠다는 의미였다. 함께 사는 것도 기회인데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도 했다. 그렇게 마음 바꾸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들이 아파트의 짐들을 매일 조금씩 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구석 저구석 짐만 부려놓고는 그만이었다. 마냥 늘어놓기 시작하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폭탄 맞은 것처럼 어수선해졌다. 방정리 좀 하라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눈에 거슬리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잠깐 집에 다니러 왔을때 슬쩍 던져보던 잔소리정도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눈치보기’가 시작되었다. 감정을 상하지 않고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치를 보아하니 아들역시 4년 만에 부모와 합쳐 사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몰라 황당해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아들과 한집에 산지 반년이 지난 지금, 위태위태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굴러가고 있다. 엄마 간섭에 불꽃 팍팍 튈 것 같던 처음의 태도도 몰라보게 누굴누굴해 졌다. 아들은 저대로 바쁜지 집에서 음식 먹는 날도 얼굴 맞대고 느긋하게 이야기 나눌 시간도 많지 않다. 시간에 쫓기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다. 드물긴하지만 밤늦게까지 엄마랑 노닥노닥 대화가 잘 풀려 나가는 날은 이런 행복도 괜찮구나 싶다.
내 주장은 조금씩 늦추고 ‘눈치보기’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들도 나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일이다. 기분 좋은 ‘함께’ 를 원한다는 뜻일 게다. 그 눈빛 속에는 내 생각이 상대의 가슴까지 편안하게 가 닿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들어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평생 마음에 두고 행해야 할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