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쓰는 겨울이야기/오연희
가을인가 봅니다. 여름이 깊어 가나 했는데 불청객처럼 불쑥 와버린 가을. 생각해보면 준비된 계절은 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인연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려 보는 것도 가을입니다. 보고싶은 얼굴이 많아지고 시차가 다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안부가 더욱 궁금해지는 계절입니다. 한국 미국 영국 몇 번 옮겨 살다 보니 떠오르는 그 얼굴과 처음 만났던 곳이 어디였더라…전생의 흔적을 찾기라도 하듯이 아득해 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더 짙게 다가오나 봅니다.
며칠 전 샤핑 갔다가 여름내 시원하게 벗어 제켰던 쇼윈도의 마네킹이 슬그머니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해의 마지막이 머잖아 오겠구나…가슴 한 켠이 서늘해졌습니다. 조금 있으면 성탄카드 한 묶음 사서 나 살아있다고 그대들도 안녕하신지 묻게 되겠지요. 아…아니네요. 그리움이 앞서 카드부터 덜렁 사놓고 그냥 서랍에 묵혀버리고 말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사놓고 안 보낸 카드들이 서랍에 가득 하거든요. 한번의 클릭으로 내 그리움을 가볍게 해결하는 편리한 세상에 물이 단단히 들어가고 있습니다. 음악과 영상이 함께하는 E-카드도 좋지만, 보고픈 마음 가득 담아 정성껏 써 내려간 편지나 카드를 우체통에 쏙 집어 넣을 때의 기쁨에 비할 수는 없겠지요.어쨌든 내가 보낸 카드를 받고 바쁘거나 아프거나 그냥…응답하고 싶지 않거나..할 수도 있겠지만… 답장을 보내오는 분들은 여전히 건재 하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내 마음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사히 새해를 맞게 되는 것에 대한 감사가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보다 더 큰 것은 그렇지 못한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거에요.
십대였을 때 저는 서른이 넘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 … 난 그전에 죽어야지… 아주 깜찍한 생각을 했답니다. 인생이 뭔지 진짜 몰랐던 것이겠지요. 지금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나이에 맞게 '살아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네요. 가을의 문턱에서 겨울이야기 하니까 어깨가 조금 움츠려지지만… 반갑게 맞이하는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먼 훗날 저의 그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님들…부디 풍성한 가을 만들어 가시길… 그리고…건강하고 따스한 겨울 맞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연희 드림. 2008년 9월 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