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24
어제:
33
전체:
1,292,329

이달의 작가
2010.10.26 04:18

아버지 '었'

조회 수 114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버지 '었'/오연희



영이 떠난 몸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섬뜩할 만큼 차가운 턱
“이마도 만져보고 볼도 만져보고 그러세요”
저승사자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젊은 장의사의 한마디
마음속도 꿰뚫는 영험함에 놀라 모두들 슬며시
아버지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이생의 기운 드나들만한 구멍이란 구멍 모두 무명으로 채우다가
틀니 안 하셨섰..었...어요? 의아한 듯 묻는 장의사
(과거완료 ‘었’ 을 강조하느라 말을 더듬는다)
입맛이라도 쩝쩝 다시면 큰일이라는 듯 여지없이 틀어막는다
안 했어요. 느직하게 뒷북 둥, 울리는 엄마얼굴이 살짝 환하다

한줌의 재가 되어, 태평양 건너 당신아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어찌어찌
알아들은 마지막 말, 딸들을 황망하게 했던
아 아, 아버지 불속으로 드시는구나
앗 뜨거! 앗 뜨거!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동동거리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어린 딸을 앞세운 어느 엄마의 사연이 아니더라도
벌떡거리는 몸 애써 붙잡는 사람들의 손에는 소주잔이 돌아가고
오래 곁을 지켜온 딸들은 합죽한 아버지 웃음 기어이 붙들고 늘어진다

회 한 접시에 막걸리 한잔이면 족하시던
(당신이 한 게 뭐 있소? 타박소리 타작하듯 해대도 어허-,
외아들 눈감을 때 눈물 한 방울 없어 매정한 양반이라는 소리 들어도 어허-,
헛기침만 뱉으시던) 아버지
하늘과 땅 가지 못할 곳 없으시겠다
“한 달음에 만날 수 있을 테니 좋겠수!” 엄마의 마지막 핀잔에
어허-
벌떡 일어셨..섰...었겠다.



-미주문학 2011 가을호-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9 "나는 기쁘다" 오연희 2003.06.22 1081
88 사랑 2 1 오연희 2007.07.03 1087
87 잭슨호수에 가면 1 오연희 2010.11.01 1090
86 수필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오연희 2003.07.23 1096
85 신앙시 거듭나기 1 오연희 2003.11.14 1096
84 수필 멍청한 미국 샤핑몰 1 오연희 2004.08.09 1102
83 밥심 1 오연희 2007.07.25 1105
82 시작노트 '어머니' 그 무게감 1 오연희 2006.05.04 1125
81 신앙시 새벽기도 1 오연희 2006.01.01 1126
80 당신 file 오연희 2004.02.14 1132
79 발 맛사지 1 오연희 2006.05.10 1138
78 원색의 삶 오연희 2004.08.08 1142
77 신앙시 약속 오연희 2006.06.08 1144
» 아버지 '었' 오연희 2010.10.26 1144
75 노오 프라브럼 오연희 2007.04.25 1147
74 나를 살게 하는 소리 1 오연희 2007.05.04 1152
73 시작노트 세월의 무게 1 오연희 2006.05.04 1160
72 수필 고흐의 '밀밭'을 벽에 걸다 오연희 2012.07.12 1174
71 추천 오연희 2010.06.08 1175
70 수필 만화 '국수의 신'을 읽는 재미 오연희 2012.06.13 1179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