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60
어제:
8
전체:
1,292,845

이달의 작가
2010.10.26 04:18

아버지 '었'

조회 수 114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버지 '었'/오연희



영이 떠난 몸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섬뜩할 만큼 차가운 턱
“이마도 만져보고 볼도 만져보고 그러세요”
저승사자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젊은 장의사의 한마디
마음속도 꿰뚫는 영험함에 놀라 모두들 슬며시
아버지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이생의 기운 드나들만한 구멍이란 구멍 모두 무명으로 채우다가
틀니 안 하셨섰..었...어요? 의아한 듯 묻는 장의사
(과거완료 ‘었’ 을 강조하느라 말을 더듬는다)
입맛이라도 쩝쩝 다시면 큰일이라는 듯 여지없이 틀어막는다
안 했어요. 느직하게 뒷북 둥, 울리는 엄마얼굴이 살짝 환하다

한줌의 재가 되어, 태평양 건너 당신아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어찌어찌
알아들은 마지막 말, 딸들을 황망하게 했던
아 아, 아버지 불속으로 드시는구나
앗 뜨거! 앗 뜨거!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동동거리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어린 딸을 앞세운 어느 엄마의 사연이 아니더라도
벌떡거리는 몸 애써 붙잡는 사람들의 손에는 소주잔이 돌아가고
오래 곁을 지켜온 딸들은 합죽한 아버지 웃음 기어이 붙들고 늘어진다

회 한 접시에 막걸리 한잔이면 족하시던
(당신이 한 게 뭐 있소? 타박소리 타작하듯 해대도 어허-,
외아들 눈감을 때 눈물 한 방울 없어 매정한 양반이라는 소리 들어도 어허-,
헛기침만 뱉으시던) 아버지
하늘과 땅 가지 못할 곳 없으시겠다
“한 달음에 만날 수 있을 테니 좋겠수!” 엄마의 마지막 핀잔에
어허-
벌떡 일어셨..섰...었겠다.



-미주문학 2011 가을호-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09 수필 [이 아침에] 중국에서 온 '짝퉁' 가방 1/7/2015 오연희 2015.01.09 50
408 수필 [이 아침에] 못 생겼다고 괄시받는 여자 1/24/2015 오연희 2015.01.25 56
407 2023 한국일보창간 축시 file 오연희 2023.07.17 72
406 하늘에서 왔어요 오연희 2015.07.07 86
405 수필 오케스트라의 단원 선발기준은? 오연희 2015.07.06 93
404 수필 다시, '존 웨인'을 찾아서 2 오연희 2022.03.08 93
403 디카시-노을 file 오연희 2023.07.18 94
402 수필 렌트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4 오연희 2016.08.25 99
401 나의 영상시 풀의 역사 3 오연희 2021.03.19 100
400 수필 역사 드라마와 대통령 선거 오연희 2022.02.23 101
399 수필 자매들의 대통령 선거 열풍 오연희 2022.03.24 103
398 수필 코로나 시대의 여행 풍경 2 오연희 2022.02.23 105
397 나의 영상시 우연히, 옹녀 2 file 오연희 2021.11.14 106
396 수필 애써 가꿔야 열리는 '관계' 오연희 2017.09.01 110
395 수필 양로병원에서 만난 어머니 2 오연희 2022.06.17 115
394 나의 영상시 황금빛 사막 3 오연희 2021.03.30 118
393 무너진 나무 한 그루 오연희 2015.07.07 120
392 수필 두 개의 생일 기념 사진 오연희 2022.04.05 120
391 나의 영상시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고 싶다 오연희 2021.06.17 124
390 수필 김밥 이야기 오연희 2022.04.29 12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