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4
어제:
68
전체:
1,292,857

이달의 작가
2010.10.26 04:18

아버지 '었'

조회 수 114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버지 '었'/오연희



영이 떠난 몸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섬뜩할 만큼 차가운 턱
“이마도 만져보고 볼도 만져보고 그러세요”
저승사자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젊은 장의사의 한마디
마음속도 꿰뚫는 영험함에 놀라 모두들 슬며시
아버지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

이생의 기운 드나들만한 구멍이란 구멍 모두 무명으로 채우다가
틀니 안 하셨섰..었...어요? 의아한 듯 묻는 장의사
(과거완료 ‘었’ 을 강조하느라 말을 더듬는다)
입맛이라도 쩝쩝 다시면 큰일이라는 듯 여지없이 틀어막는다
안 했어요. 느직하게 뒷북 둥, 울리는 엄마얼굴이 살짝 환하다

한줌의 재가 되어, 태평양 건너 당신아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어찌어찌
알아들은 마지막 말, 딸들을 황망하게 했던
아 아, 아버지 불속으로 드시는구나
앗 뜨거! 앗 뜨거!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동동거리며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어린 딸을 앞세운 어느 엄마의 사연이 아니더라도
벌떡거리는 몸 애써 붙잡는 사람들의 손에는 소주잔이 돌아가고
오래 곁을 지켜온 딸들은 합죽한 아버지 웃음 기어이 붙들고 늘어진다

회 한 접시에 막걸리 한잔이면 족하시던
(당신이 한 게 뭐 있소? 타박소리 타작하듯 해대도 어허-,
외아들 눈감을 때 눈물 한 방울 없어 매정한 양반이라는 소리 들어도 어허-,
헛기침만 뱉으시던) 아버지
하늘과 땅 가지 못할 곳 없으시겠다
“한 달음에 만날 수 있을 테니 좋겠수!” 엄마의 마지막 핀잔에
어허-
벌떡 일어셨..섰...었겠다.



-미주문학 2011 가을호-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9 그네타기 1 오연희 2010.03.24 1252
188 추천 오연희 2010.06.08 1175
187 그린리버 오연희 2010.06.08 1236
» 아버지 '었' 오연희 2010.10.26 1144
185 잭슨호수에 가면 1 오연희 2010.11.01 1090
184 여자, 내 자리 오연희 2011.02.10 953
183 귀향 4 오연희 2011.02.10 1306
182 명당자리 1 오연희 2011.02.10 1184
181 수필 장모누나 시언니 오연희 2012.03.20 937
180 수필 시(詩)가 흐르는 서울 오연희 2012.03.20 687
179 수필 샤핑 여왕의 참회록 오연희 2012.03.20 674
178 블랙 엥그스 오연희 2012.03.20 728
177 1 오연희 2012.03.20 894
176 뿌리 1 오연희 2012.03.21 891
175 신부엌떼기 오연희 2012.03.30 786
174 수필 절제의 계절 오연희 2012.05.04 770
173 수필 좋은 이웃 찾기, 내 이름 찾기 오연희 2012.05.04 875
172 수필 칠흑 같은 밤길의 동반자 오연희 2012.05.04 858
171 수필 쥐뿔도 없지만 오연희 2012.05.25 990
170 수필 만화 '국수의 신'을 읽는 재미 오연희 2012.06.13 1179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21 Next
/ 21